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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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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모

활동시기
고려시대

상세설명

선생의 휘는 영모(令謨)이요 시호는 문경(文景)으로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시조(始祖)인 상의봉어(尙儀奉御)의 벼슬을 지낸 민증도(閔증道)선생의증손(曾孫)이고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이던 민의(閔懿)선생의 아들이다.

여흥 민씨(驪興 閔氏)의 시조는 민증도(閔증道)선생인데 그 상계(上系)나 득성전말은 확실치 않으나 일설에는 공자(孔子)의 제자였던 민자건(閔子騫)의 후예로서 그 후손중의 한 사람이 고려 때 사신으로 우리 나라에 왔다가 여흥(驪興)에 정착하여 시거 하였다고도 하고 또한 일설에는 경기도 여주군 신륵사(神勒寺)부근에 민씨 시조의 발상지라는 민성혈(閔姓穴)이 있다는 전설이 구전되어 있으나 이 역시 분명치 않다. 세보상에는 여흥 민씨의 시조는 민증도선생이다.
선생은 1112년(고려 예종 7년)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학문을 즐겨 좋아하더니 널리 수학하여 고려 인종(고려 인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을 지냈다.명종(明宗)이 아직 잠저(潛邸)에 있을 때 하루는 꿈을 꾸니 한 재상(宰相)이 광화문(廣化門)에서 나오는데 따르고 받들기가 성대 하였는데 모두가 말하기를 이는 명종 임금의 재상이라 하였다. 명종(明宗)은 꿈을 깨고도 항상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명종이 즉위하자 선생은 형부시랑(刑部侍郞)으로서 남성시(南省試)를 맡아 방방(放榜)할 때 명종(明宗)이 선생을 보니 그 얼굴이 꿈에 본 재상과 같은지라 명종(明宗)은 마음으로 기뻐하며 크게 등용할 뜻을 정하고 이에 추밀원 부사(樞密院 副使)에 오리고 이어 판병부사(判炳部事)를 거쳐 벼슬이 중서시랑 평장사(中書侍郞 平章事)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 平章事), 판리부사(判吏部事), 태자 태사(太子 太師)에 이르렀다.

선생은 성품이 겁이 많고 말을 잘하지 못 할뿐 아니라 조리가 치밀치 못하여 정권을 잡아 정사를 하였으나 청알(請謁)이 공공연하게 되어 가려 쓰는 것이 매우 문란하였다 한다.
1183년(고려 명종13년)에 벼슬을 물러나서 1192년(고려 명종 22년)에 졸하니 향년 80이였고 문경(文景)으로 시호 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인의 족보,인명대사전,국사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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