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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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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자의삼열부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터지니 우리 민족 5천년사에서 가장 처참한 전란이었음은 새삼 밝혀 말함이 췌언이라 하겠다. 그 해 4월 13일에 왜군이 부산 상륙을 하고 삼로로 갈라져 동래, 영천, 군위, 비안을 거쳐 북상하는 가등청청의 동로군 선봉이 여기 문정자 마을을 짓밟아 지나간 것은 상주에서 24일에 밀양, 대구, 선산을 거쳐온 소서행장의 중로군과 서로 만나 전력을 가다듬었으니 이날에서 하루 전후가 아닌가 짐작된다.

평화롭던 여기 강촌에도 도적들의 주력 부대가 지나가는 곳이고 보니 그처참상은 입으로 다 말할 수 없고 글로써 다 쓰기조차 어렵다. 그 가운데서도 난후에 1628년(인조 6년) 조정서는 여기 살던 남평문씨 일문에 세상에 드물게도 한꺼본에 삼열부를 현창시켰으니 오늘날까지도 널리 알려져 왔고 그 사연은 이러하다. 왜군이 가는 곳엔 곳마다 약탈이요, 살륙이요, 강산이 초토화되는데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생사의 갈림길이 어려움은 어이 다 말하랴.

손에 손을 맞 잡고 뒤좇는 도적을 피하려고 있는 힘을 다하여 삼열부가 찾아간 곳은 낙동강 물줄기가 굽이치는 용담소 언덕이었다. 상기된 눈 빛으로 서로가 한 번씩 쳐다보고는 말 없는 비장함이 갈 곳은 어디랴. 높고 높은 그 언덕에서 차례 차례 눈을 감고 뛰어내리니 용담소 푸른 물은 아무말 없이 그들을 받아들여 안았다. "풍덩 풍덩 풍덩" 그 세 차례의 소리는 그들의 생먕을 받아들여 만세의 정렬을 외쳤다고나 할까?" 문경제의 부인 남양홍씨, 문응주의 부인 함양여씨, 문명주의 딸 처녀가 바로 그들이니 응주와 명주는 경제의 아들이요, 형제이고 보니 남양홍씨로 봐서는 며느리와 손녀를 함께 데리고 간 것이다.

세월은 흘러 흘러 또 다시 4백 년, 용담소 푸른 물은 강 줄기가 바뀌어 갯벌로 변하고 낙동강 호안 공사가 이루어지니 지금은 옥토 들판으로 바꾸어지게 되었다. 높고 높은 그 언덕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고 마음 아픈 나그네의 발길을 잡고 놓지 않으니 끝 없이 불어 오는 강 바람만 솔 숲에 울고 간다. 이름 없는 산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짙푸른 가을 하늘에 어디론지 멀리 떠나가는 흰 구름만 쳐다보았다.

정려각은 헐리고 비석만이 길 변에 초라한데 오가는 길 손마다 마음을 가다듬고 말에서 내려 가도록 표지한 하마비는 도로 공사 때에 흔적을 잃었다니 애석하다. 자손은 모두가 멀리 떠난지 오래고 지금은 이 마을에 한 집도 없으나 해마다 서릿발 높은 가을이 깊으면 묘소를 찾아와 소분하고 향화를 한다니 반갑다. 인간의 생명을 지상의 가치로 알아야 하는 지금에 와서 삼열부의 정렬을 찬탄만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대를 규율하는 윤리관 앞에서 성실하게 살아 왔고 그들의 지상 가치관을 지키지 못할 때에는 목숨조차 감연히 버렸으니 만세의 사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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