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SNS 바로가기

  • 페이스북
  • 블로그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인스타그램
  • 유튜브

경북도청 홈페이지

  1. Home
  2. 경북을 빛낸 인물>경북의 역사>경북소개>경북소개

경북을 빛낸 인물

no image

문영

자화/해은
활동시기
고려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아득한 옛날 인류는 나무 열매를 따먹고 풀잎으로 몸을 가리며 살아 왔으나 연구와 개발을 거듭하여 오늘날 우리가 입는 옷감이 만들어 졌다. 그런데 옷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는 옷감이 되기까지는 고마운 분의 숨은 공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약 600여 년전, 고려 공민왕(恭愍王) 18년(1369) 때 충선공 문익점(忠宣公 文益漸)선생이 중국 원나라에서 목화 씨앗을 붓뚜껑 속에 숨겨와 그의 장인(丈人) 정천익에게 부탁하여 경남 산청지방에서 처음으로 재배에 성공하였고, 그의 손자인 한성공 문 래(文萊)는 목화로 실을 뽑는 기계인 "문래"를 만들었으며 "문래선생의 동생 양민공 문영"은 베짜는 기계를 만들어 "문영베"를 짜내셨다.

선생의 본관은 남평이고, 이름은 영(英), 자는 자화(子華), 호는 해은(海隱)으로 고려 공민왕 17년(1368)에 단성(丹城)에서 태어나서 형과 함께 목은(牧隱) 이 색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태조 2년(1393)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로 벼슬길에 올랐다. 조선 태종(太宗)때 일선 부사(一善府使)로 부임하니 처가(妻家) 또한 같은 고을인지라 해평 월호동(반포)에 자리를 잡고 화려한 벼슬보다 민생을 위한 산업 발전에 힘을 기울이는데 보람을 가지고 할아버지 "문익점"선생의 거룩한 뜻을 높이 받들어 베짜는 기계를 만들기에 전념하여 오랜 연구 끝에 "조기산"(메틀산-금산동 뒷산)의 모양과 "공상다리"(오상동 국도에 놓인 다리)의 모양을 따서 만든 베틀로 "문영베"를 짜는데 성공하였으니, 지금도 그 산을 "베틀산"이라 하고 그 곳에 있는 굴을 "포기굴"(布機窟)이라 하며 그곳 다리 이름을 "공상다리"라 부르고 있다.

그 후, 세종의 부름을 받아 홍문관 직제학을 하시다가 62세로 세상을 떠나시니, 나라에서는 "자헌대부 이조판서"를 추증하고 양민(襄敏) 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유림에서는 봉강서원(鳳岡書院)에 모시어 선생의 빛나는 유덕을 기다리고 있다.

참고문헌 : 국사대사전 P499, 양민공묘갈명, 선산군지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 제3유형(출처표시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행복콜센터 :
 1522-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