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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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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낙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효자 문용낙(文龍洛)은 남평인(南平人)이다. 그 어버이를 섬김에 예법에 어긋나는 일이 조금도 없어 효자로 이름이 났더니 불행히도 일찍 죽었다. 부인 전씨(全氏)는 성산인(星山人) 부호군(副護軍) 재일(在一)의 딸로 18세에 문씨댁으로 시집와 20세에 남편을 잃게 되었다. 남편이 죽으며, "부모님이 계시고 어린 것이 있는데 불효한 내 몫을 당신께 부탁드리오!" 남편은 간곡한 유언을 했다. 효부 전씨는 장례를 치른 후 밤이면 삯바늘, 낮이면 남의 집방아를 찧어주며 품을 들어 시부모님 섬기기에 온갖 정성을 다했다.

여든이 되었을 때는 자식도 장성하여 또한 효성스러웠고 집안도 제법 부유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효부 전씨는 정성스런 밥상을 대하자 시를 읊조리며,
'군자(남편을 가리킴) 먼저 가심이여(君子歿兮)여
세가지 즐거움이란 말 내겐 없구려 (不稱三樂)이로다
박명한 이 목숨 길기도 해라 (苟支薄命兮)여
내홀로 이 복을 누리고 있구려.' (獨享遐福)이로다
눈물을 주루루 흘리는 바람에 자손들도 다 측연해졌다 한다. 현재 김천 지례 여배리(汝培里) 속수(速水)에 효자, 효열비가 나란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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