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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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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옥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효녀 득옥은 감천면 상기리 어느 집의 여자 종이었다. 비록 천민의 몸이었으나 효성을 하늘에 닿을 정도였다. 이조말 노비제도가 완화될 때에 80에 가까운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그 효성은 눈물겨운 바가 있었다.

때마침 시절이 수해로 인해 웬만한 집은 양식이 없어 풀뿌리로 연명을 할 정도였고 심하면 죽은 아이를 업고 부잣집에 와 자식을 죽였다고 억지를 대고 양식을 얻어가던 일도 있었던 때였다. 효녀 득옥도 어머니를 모심에 멀리까지 나아가 구걸을 해다 봉양했는데 자신은 쑥 뿌리로 연명하며 구걸한 양식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날도 멀리 나가 양식을 구걸해 오던 중 영양실조로 모을 지탱하지 못하고 귀가 중 길거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의 자루에는 구걸한 곡식이 두어 되나 있었는데 길 가던 사람들이, "어머니를 봉양하려면 너도 그 곡식을 먹어야 되지 않느냐?"
고, 딱해서 묻자,
"남들이 내게 곡식을 주는 것은 늙은 어머니가 계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미 어머니 몫으로 들어온 곡식을 감히 내가 어찌 먹겠습니까?"
숨넘어가는 소리로 간신히 말을 이으며, 좀 일으켜 달라고 손짓을 했다. 효녀의 이 거동을 본 동민은 감동하여 말문이 막힌 채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러나, 효녀 득옥은 쌀자루를 이다가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이…이…자루를…"
득옥은 숨이 넘어가면서도 자루를 들어 보이며 그 자리에서 그만 숨이 지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동민들은 다들 자기 자식을 잃은 듯 슬퍼했으며 효녀를 대신해 그 어머니를 죽을 때까지 동민이 돌보다 주었으며 그녀의 갸륵한 뜻을 기리기 위해 동민이 성금을 모야 기동 앞에 효행비를 세웠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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