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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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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수

활동시기
고려시대

상세설명

교하 노씨의 세보에 의하면, 노영수는 시조에서 19세손이고 생년과 졸년을 알 수 없으나 고려 충렬왕 때에 생존했다. 벼슬은 밀직사 좌승선 판어사대사 이부상서에 올랐고 문하시중평장사로 증직되었고, 시호를 의열이라고 한다. 묘는 경산읍 중산동 서편에 있다. 노 정승 묘라고 불리고 있다. 그의 손자 진은 1372년(공민왕 21년) 명나라에서 한약재와 약방을 내린데 대한 사은사로 명에 다녀왔고, 벼슬은 판밀직사(왕명의 출납, 궁중의 숙위, 군기를 맡은 관서의 종2품의 벼슬)에 올랐고 창성군에 봉해졌고, 1389년(공양왕 1년)에 그의 딸이 공양왕비로 들었으니 순비이다.

경산이 1172년(고려 명종 2년)에 경주부에 속했고, 1317년(충숙왕 3년)에는 고승 일연의 고향으로서 현으로 승격(지금의 경산읍, 압량면 일부, 남천면, 고산 일대) 되었는데 1391년(공양왕 3년) 다시 장산군으로 승격된 것은 순비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평장사 노영수의 무덤은 중간에 그 후손들에게 실묘되었다가 1799년(정종 23년)에 후손들이 찾게 되어 봉분을 다시 닦을 때 지석을 발견 확인되었고 지방에서는 옛부터 노 정승묘라고 불리고, 경산읍 옥산동에 살았다고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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