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SNS 바로가기

  • 페이스북
  • 블로그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인스타그램
  • 유튜브

경북도청 홈페이지

  1. Home
  2. 경북을 빛낸 인물>경북의 역사>경북소개>경북소개

경북을 빛낸 인물

no image

노탁

공중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자는 공중(公仲), 관향은 광주(光州), 경남 창녕군 초계(慶南昌寧郡草溪)에서 태어나 중년에 경북 영천군 창수리(慶北永川郡蒼水里:현 금호읍 강정리 일 때)로 이거하여 살았다. 아버지는 조선 세조 때 사간(司諫)으로 임금이 불교에 매혹되어 있음을 극간(極諫: 지극한 정성으로 간함)하는 상소(上疎)를 올려 바로 잡은 동악(東岳) 노선경(盧善卿)선생의 둘째 아들로서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여 부모상(父母喪)에 각각 3년토록 여묘(廬墓: 묘 곁에 지은 움박) 살이를 하여 형제 4인이 다 남의 존경하는 바가 되었다.

특히 맏형 묵재(墨齋) 노필(盧 )선생은 기묘 사화(己卯士禍)때 피해를 입은 명현으로서 점필재( 畢齋) 김종직(金宗
直) 선생의 문인이요, 한휜당(寒暄堂) 김광필(金宏弼)선생과는 도의(道義)로 사귀었다. 묵재가 사화로 피해를 입는 것을 본 공은 효우(孝友)로 받은 용양위사직(龍 司直) 벼슬도 버리고,초야에 묻혀 살기로 결심하고 영천으로 이거했던 것이다. 창수리에서 학문에 힘쓰고 몸을 닦아 조용히 은거 생활을 하면서 정우당(淨友黨) 조치우(曺致虞)와 깊이 도의로 사귀였다.

묘는 영천군 대창면 직천동(永川郡大昌面直川洞)척산(尺山)에 있으며, 그 곁에 자손들이 추모재(追慕齋)를 지어 그를 경모하고 있다. 또 1921년부터 5년간 후손 노정용(盧亭容)이 3.1운동의 정신을 받아, 구국운동의 일환으로 이 건물을 빌어 "직천학원"(直川學院)을 개설하고 일족과 인근 청년들을 상대로 무료로 신식교육을 실시하고 농촌계몽에 힘썼던 곳이기도 한데 그의 죽음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 제3유형(출처표시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행복콜센터 :
 1522-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