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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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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노 수선생의 자는 여성(汝成) 호는 소암(小庵) 서기 1553년(명종 8년)에 진사 시험에 합격하니 그때 나이 48세였고, 그해가 바로 임고 서원을 짓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선생은 일찍이 학문이 벼슬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의 도리를 닦는데 있는것임을 깨닫고 기묘사화(己卯士禍)때 명현(名賢)이신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 선생에게 학문의 도리를 깊이 배우고 그 선생의 명을 받아 '삼족당' 이란 김대유 선생 정자의 기문을 지어 명문장가(名文章家)로 일세에 이름이 높았고, 뒤에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찾아 퇴계 선생에게 심학(心學)의 오의(奧義)를 전수 받아 오직 인륜의 근본인 삼강오륜을 밝혀 날로 어지럽혀 가는 사회(그 당시 명종 임금의 모후 문정 왕후가 수렴 청정하여 을사사화를 겪게 되어 자식이 어버이를 죽이고 종이 주인을 죽이는 일들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났음)를 바로 잡는 길은 오직 풍교(風敎)를 진흥시키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도의(道義)로 맺어진 사이요, 다 같이 퇴계 문인인 명산 김응생(明山 金應生) 노촌 정윤량(魯村 鄭允良) 두 선생과 같이 수의하여 사재(私財)를 털어 우리 고장이 낳은 위대한 유학자요, 충신이요, 효자이신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선생의 탄생지인 즉 현 영천군 임고면 우향동 부래산 경치 좋은 곳에 서원을 짓기로 했던 것이다.

임고 서원이 짓기 시작되어 3년만인 서기1555년에 중공 되었지만, 준공 1년전인 명종 9년에 대왕께서는 이를 크게 칭찬하고 "임고서원"이란 현판과 더불어 오경 사서(五經四書), 통감(通鑑), 위전(位田)등을 내리시니 주 세붕(周世鵬)선생이 풍기(豊基)에 세운 소수서원(紹修書院) 다음으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서원이 되었다.

소암 선생은 또 서기 1560년(명종 15년) 2월에 영천군수 심 의검(沈義儉)이 거문고를 만들기 위하여 항고 뜰 앞에 심어진 오랜 오동나무를 베어 넘어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유생(儒生)들이 강론소(講論所)인 명륜당(明倫堂)까지 넘어질뻔했으므로 고을의 여러 부로(父老)와 유생들로 더불어 다른 오동나무를 그 자리에 옮겨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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