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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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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석

몽아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1898년(광무 2년)
시대

상세설명

의령 남씨, 죽사(竹史) 남 규원 선생의 넷째 아들로서 1898년(光武 2年 戊戌) 영양읍 옥골에서 태어났다. 호는 몽아(夢我, 初號는 夢啞)이다. 외모와 성격이 아버지를 닮아 수려(秀麗)하고 위엄이 넘쳐, 청년 시절 서울에 거주할 때, '서울깡패'라는 폭력 불량배들도 선생이 안광 형형(眼光 炯炯)한 눈을 부릅뜨고 우렁찬 음성으로 꾸짖으면 위압(威壓)당하여 떨었었다. 어릴 적부터 독립 운동가인 중형(南 廷八 先生)의 감화를 받아 배일사상(排日思想)이 투철하였으니, 영양 공립 보통학교(英陽公立普通學校)의 제 1회 졸업반으로서 완악한 일본인 교장과 다투었다는 이유로 4학년(그때는 4년 졸업)을 졸업하고도 졸업장을 받지 못하였다.

그 후 서울의 휘문의숙(徽文義塾, 徽文中高等)에 다녔는데 졸업성적이 개교(開校)이래 가장 우수한 성적이라고 했다. 다시 경성 법학 전문학교(京城法學專門學校)에 진학하였으나 항일(抗日) 운동을 한다고 졸업반인 3학년 때 퇴학당하였다. 그 후 3.1운동에 적극 참가하였을 뿐 아니라, 1928년에 중국을 왕래하면서 항일 투쟁을 계속하다가 왜경(倭警)에게 체포되어 신의주(新義州)경찰서에 구속되었다. 선생은<너희 왜경이 나의 몸은 잡아가도 나의 정신은 잡아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여 왜경들이 더 어쩌지 못했다.

본디 성품이 호협(豪俠)한 남아(男兒)의 기질에다 영웅의 기상(氣像)이요 멋과 풍정이 있는 풍류객이기도 했다. 언변(言辯)과 사교(社交)에 능란하고 정치적 수완과 역량(力量)이 출중(出衆)하여 갖가지 일에 능소능대(能小能大)하니, 20대에 이미 서울의 언론계며 교육계며 재리(財理)문제며 소송(訴訟)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려운 문제에 부닥친 이들은 청년 몽아(夢啞)를 찾아, 그의 명석(明晳)한 판단과 능 수단에 의뢰하여 선처(善處)를 구했다. 이를테면, 1924년 조선일보사(朝鮮日報社)를 운영모체(運營母體)인 대정실업친목회(大正實業親睦會 親日團體였음)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신석우(申錫雨), 최선익(崔善益)이 인수(引受) 경영(經營)하도록 하고 월남 이상재(月南 李 商在)선생을 사장으로 추대하는 일의 이면공작(裡面工作)에 청년지사(靑年志士)인 몽아 선생이 배후에서 주동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워낙 천품(天稟)이 웅대한 뜻과 포부를 가진 선생이라, 속(俗)된 감투욕이나 공명심(功名心)따위는 한 조각 뜬구름인양, 잠깐 잠든 사이 짧은 꿈(一場春夢)인양 허망하게 여겨, 자기의 공치사(功致辭)에는 벙어리 같아서 꿈 몽(夢) 벙어리 아(啞)로 아호(雅號)를 지은 연유(緣由)이니, 이 대인(大人)의 흉금(胸襟)이야말로 호연지기(浩然之氣)요 광풍제월(光風霽月)격이라 하리라.

왜정말기에 이른바 대동아 전쟁이라는 미일(美日)전쟁의 전황(戰況)이 침략당초(侵略當初)의 승세(勝勢)에서 역전(逆轉)되어 왜적에게 결정적(決定的)으로 불리하게 되었다. 이에 단말마적발악(斷末魔的發惡 곧 최후발악)으로 왜경(倭警)의 1945년 3월 독립운동자 검거(檢擧)에 검속(檢束)된 선생이, 경성동대문경찰서(京城東大門警察署)에서 가
혹(苛酷)한 고문(拷問)을 당하였으며, 그 여독(餘毒)인지 황달과 발진티푸스에 걸려 중태로서 병보석 되었으나, 지사(志士)에게 정녕 잔인(殘忍)한 달인 4월 21일, 선생의 심혼골수에 사무친 비원(悲願)인 조국광복(祖國光復)을 3개월 남짓 앞두고, 천추(千秋)의 유한(遺恨)을 품은 채 운명(殞命)하니 향년 48세이다.

이에, 몽아 선생의 중형(仲兄)-8번이나 요하(遼河)를 건너 우리 해외 임시정부(海外 臨時政府)와 비밀 연락하면서 조국광복 위해 노력하다가 왜적의 서슬 푸른 감시망(監視網)에 길이 막혀 사세부득이(事勢不得已) 서울서 지나다가 영양으로 낙향(落鄕)한 중형 북산(北山 南 廷八)선생이 사랑하는 막내 동생의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곧 상경(上京)하여, 응급치료 하였으나 끝내 임종하게 된 피눈물 겨운 영결시(永訣詩) 막내아우 정석을 통곡한다(哭舍季廷錫)라는 싯귀에 "홀연히 저승길로 먼저 가다니 하늘에 사모치는 눈물이 흐른다"(忽作泉坮先逝路 徹天寃恨淚千行) 진실로 영웅적 기상이던 독립투사인 동기연지(同氣連枝)가 민족의 원수(怨讐) 왜경에게 고문치사(拷問致死) 당하다시피 비명(非命)으로 길이 갔으니 어찌 원한이 하늘에 사무치지 않으리요.

우리 고장출신으로서 광복 조국의 정계(政界)에 큰 별(巨星)의 역할을 감당했을 몽아 남정석(夢啞 南廷錫) 선생을 민족해방 전에 사별(死別)한 아쉬움은 수십 성상(星霜)이 흐른 지금껏 선생을 추모하는 모든 사람들의 심정에 못내 애석(哀惜)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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