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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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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현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여사는 남정한(南廷漢)선생의 둘째딸로서 1872년(高宗 9年) 석보면 지경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성품이 단정하고 재질이 빼어나서, 7세에 이미 국문에 능통하고, 8세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한문을 배워 글을 지을 만큼 성적이 우수하였다. 19세에 같은 동리에 거주하는 의성 김씨 김병주(金炳周)이기 출가하였다. 시부모께 효성이 지극하고 남편에게 순종하고 부공(婦工)에 착실하였으므로, 진보(眞寶)에서 효부의 표창을 받았었다.

당시 한말(韓末)의 나라 다스림이 어지럽고, 일본과 러시아의 세력이 우리 나라에 침입하여 1895년(乙未) 왜병이 민비(閔妃)를 시해하고 분란을 일으키므로, 나라의 위태로움을 구원하려고 여러 곳에서 의병이 일어났었다. 여사(女史)의 남편도 의병으로서 왜적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으니, 이로써 6년간의 짧은 부부생활이 끝났던 것이다.

상부(喪夫)한 후에 수비면 계동(桂洞)으로 이사하여 가난한 살림살이에 여사는 손수 길삼을 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3대 독자이며 유복자(遺腹子)인 어린 아들 영달(英達)을 키우며, 20년이 지난 후인 기미년 3.1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이 때 나이 47세, 끝내 왜경의 끈덕진 지명수배(指名手配)를 피해 만주로 망명(亡命)하였다.

여기서 부군의 친족인 일송(一松) 김 동삼과 함께 광복 운동에 참여 활약하였다.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적(籍)을 둔 여사는 우리 독립운동의 각 단체와 군사기관, 그리고 한교(韓僑)의 농촌을 돌아다니며 농촌의 개발(開發)과 계몽에 노력하는 한편 동포들에게 조국 독립의 얼을 일깨우며, 북만주 일대 12곳에 예수교회를 창설하여 복음을 전도하기도 하고, 10여 개소의 여성 교육 기관을 세워 여성 계몽과 독립운동에 힘썼다.

1933년(癸酉)은 일본 군대가 만주를 석권(席捲)하고 만주국 정부를 수립하던 해다. 이 때 만주국 전권 대사로 일본 육군대장 무등신의(武藤信義)가 관동군 사령관을 겸하여 신경(新京)에 주재(駐在)할 때이다. 여사가 일본 대사 무등신의를 만주국 건국일인 3월 1일에 폭살(爆殺)할 계획으로, 중국인 늙은 거지 차림으로 변장하여 하얼빈에 가서 폭탄을 구하여 치마 밑에 숨기고, 대낮에 신경(新京)에 와서 일본 대사관에 들어가다가 거사 직전(擧事直前)에 밀정(密偵)의 밀고(密告)로 인하여 왜놈 경찰에 체포되니, 천추의 한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여사의 강철같은 의지와 송죽 같은 절개와 추상렬일(秋霜烈日)같은 애국심은, 그 당시 전 일본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고, 온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일본 영사관에 구금되어 5개월간 갖은 혹독한 형벌을 당했으며, 하얼빈 감옥으로 옮기게 되자, 왜경의 음식 차입을 일체 거절하고 말하기를 "원수 도적을 토살(討殺)하지 못하고 도리어 적에게 잡혔으니 다만 죽음이 있을 뿐이라."하고, 단식투쟁 15일만에 거의 죽은 몸이 되어 병보석(病保釋)으로 출감, 동지들의 정성어린 간호와 치료에도 워낙 혹독한 형벌을 당한 끝이라 목숨을 부지(扶持)할 수 없게 되었다. 여사는 하얼빈 시내 조선여관에서 파란 많은 일생을 마치니 향년 62세이었다. 한국인 교포들이 하얼빈 외국인 묘지에 사회장(社會葬)을 하고 사당(祠堂)을 짓고 비(碑)를 세웠다.

조국의 원수와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다 갚지 못한 채 순국하신 남 자현 여사의 영혼은 하나님아버지의 슬하로 돌아가서도 마냥 조국의 광복을 위해 기도를 올렸으리라. 뒤늦게 남여사의 인격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알려졌으니, 1970년 가을에 김영달(金英達) 옹(翁)을 만나 영양군지(英陽郡誌)를 전달하는 이에게 하는 김 옹 말이 "선비(돌아가신 자기 어머니)께서 하얼빈 감옥에서 병보석 되었을 때에 말씀 사뢰기를 '어머님의 일을 잡친 밀정(密偵)놈을 수일 내로 사살(射殺)할 좋은 기회가 마련 됐습니다' 했더니, 기뻐하실 줄 믿었던 어머니께서 '절대로 그자를 죽이지 말어라. 주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는데, 나라의 원수 왜적은 죽여야 옳지만, 아무리 나라에 해를 끼친 죄인이라 하더라도 나를 해친 원수인데 게다가 왜놈 아닌 동포를 죽이다니? 예수교인으로서 마땅치 못한 행위이니 부디 해치지 말어라' 하셔서 '모처럼 원수 갚을 기회를 그냥 넘겼지요." 여사의 그런 말씀의 옳고 그름은 비평의 여지가 있지만 "원수를 사랑하라"하신 성경말씀을 실천하는 높은 신앙의 덕성에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랴.

진실로 남 자현 여사는 단군이래 우리 나라 여성계에서 "애국의 상징(象徵)"으로 이제는 청사(靑史)에 길이 빛나는 존재가 되었으며, 하나님의 품안에서와 나라사랑하는 겨레의 가슴마다에 길이 영생하리라. 1962년에 정부에서는 여사께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복장(複章)을 추서 하였다.

참고문헌 : 영영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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