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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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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

사수/고산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의령
출생시기
1548년(명종 3년)
시대

상세설명

본관은 의령(宜寧)으로 자는 사수(士秀), 호는 고산(孤山)이며 강무공(剛武公) 은(誾)의 5대손(五代孫)으로 1548년(명종 3년)에 문경군 가은읍 하괴리(聞慶郡 加恩邑 下槐里)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효성이 남다름을 보여 6세에 공자가 지은 효경(孝經)을 다 읽고 부모를 섬기는데 정성을 다하여 효아(孝兒)로 이름이 높더니, 18세에 부친상을 당하여서는 밤낮으로 무덤에서 떠나지 않고 땅을 치고 부르짖으며 죽물로 연명하고 고기와 과일을 먹지 않아 두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어 의원에게 여러 달 치료를 받아 나았다.

또 어머니가 나쁜 병에 걸려 약을 써도 효험이 없자 그는 "어버이 섬기는 사람이 의술을 모를 수 없다."하며 약방문을 보고 스스로 비결을 차츰 익혀 침과 약으로 차차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니 마을에서 그의 지극한 효도에 모두 탄복하였다.

그의 부지런함과 행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그는 꺼렸으나 나이 50세가 넘었을 때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그의 재주와 도량을 한번 보고 만족했하며 조정에 천거하여 조지서(造紙署) 별제(別提)로 나가게 되어 여러번 옮겨 상의원(尙衣院) 및 귀후서(歸厚署)에 있다가 한때 찰방(察訪)으로 있었다.

1603년 장흥고(長興庫)의 직장(直長)이 되었고 1604년 선조께서 두풍(頭風)을 앓아 밤중에 더욱 심하여 어의(御醫)들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임금이 정원(政院)에 명을 내려 신하들 중에서 약방문을 잘 아는 이를 물으니 곧 남영이 추천되어 들어가 선조께 말하기를 빗물이 흘러서 땅의 기운이 퍼지고 나라의 기강이 떨쳐야 어질고 착한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비유하며 사람의 몸에 맥락이 소통하면 질병이 없어진다는 등 여러 말로 설명하니 임금이 크게 칭찬하시고 의관(醫官)을 시켜 그가 가르친 혈(血)에 침을 놓으니 두통이 곧 치료되었다. 임금은 즐거워하며 "그의 말을 들으니 모든 이치에 통달한 선비이므로 병만을 잘 다스릴 것이 아닐 것이다"하며 특별히 당상관(堂上官)으로 승진시켰다.

1605년(선조 38년) 오위장(五衛將)으로 진천(眞川) 현감으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암행어사가 그의 높은 치적(治積)을 보고하였고 1606년 양성(陽城) 현감으로 갔다가 병으로 사직하였으나 얼마되지 않아 마전(麻田) 군수를 역임하고 1616년(광해군 8년)에 음죽(陰竹) 현감으로 있을 때 또 어사가 그의 선정을 조정에 보고 하였는데, 그해 12월에 관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조정에서는 그가 관직에서의 충실함과 선왕(先王 : 宣祖)께서 특별히 잘 대하여 준 은혜로 가선대부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증직하고 본도(本道)에 명하여 장사를 지내는데 모든 장비를 돕도록 하는 한편, 길을 닦아 상주군 은척면 두곡리(尙州郡 銀尺面 社谷里)에 묘를 쓰도록 하였다. 그 후 사림들이 문경군 가은읍 전곡리에 있는 소양서원(瀟陽書院)에 봉안하여 제사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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