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자는 영만, 호는 송강, 본관은 김해, 극검의 후손, 은련의 아들로 선남 출신이다. 1919년 3·1운동에 유진성, 이태희, 송규선 등과 더불어 합의하여 성주군내의 동서부의 책임을 맡고 민중을 거느리고 4월 2일, 성주읍의 관왕묘 뒤산과 개묘산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포고, 왜군이 발포하여 이태희 등이 바로 순국하고 그 외는 왜병에게 잡혀 대국감옥에 갇혀서 홰병이 매질을 하여도 굽히지 않았고 철살 손가락을 뚫어서 쫓아도 왜병을 큰 소리로 꾸짖고 "속히 죽어서 국은에 보답하겠다"고 하였으며 1919년 5월, 서울감옥으로 옮겨 온갖 모진 고문으로 2년을 끌다가 죽게 되었는지라 1920년말에 석방하니 석방 후 2달만에 향년 26세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