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이름은 취성(就成), 자는 성지(成之), 호는 진약당(眞藥堂) 또는 서산(西山)으로 1492년(성종 23년) 3월에 고아면 문성리에서 태어나서 재질이 뛰어나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학문과 덕행이 높아 그의 스승인 송당 박영도 "그대의 재주와 학문이 결코 옛 명현들에 뒤지지 않는다"고 칭찬하였다. 마을 뒷산에 서산재를 지어 네 아우를 비롯하여 많은 후학을 가르치며 크게 성취시켰으며, 언제나 닭이 울면 일어나 의관을 갖추고 서재로 물러나와 책상을 대하여 꼿꼿이 앉아 글을 강론하고 의심나는 부분은 분명하게 설명을 해 주며 밤이 늦도록 잠자리에 들지 않고 정자(程子), 주자(朱子)학에 맞도록 힘써 도학을 밝히고 학문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다.
영상 김안국 회재 이언적이 여러 차례 나라에 천거하니 조정에서 벼슬을 내리며 불렀으나, 벼슬을 받지 아니하고 뜻을 지켜, 임천에서 옛 성현을 추모하면서 더욱 학문에 열중하였다. 불우한 사람과 병든 사람을 더욱 불쌍히 여기고 의학 공부에 열중하여 귀천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부족함을 보완하고자 초야에 묻혀 제자를 가르치다가, 1550년(명종 5년)에 일생을 마쳤다. 선생의 높은 학문과 덕행은 이웃과 고을을 교화하였으니 후생이 낙봉서원(洛峰書院)과 서산사(西山祠)에 모시고 있으며 문집이 있다.
참고문헌 : 유교연원록, 일선지, 진락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