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자는 군선(君善) 호는 호연당(浩然黨), 본관은 경주(慶州) 정숙공(貞肅公) 인경(仁鏡)의 7세손이다. 태종조(太宗朝)에 문과(文科)에 올라 병조정랑(兵曹正郞)을 거쳐 통천군수(通川郡守)와 청풍부사(淸風府使)를 역임(歷任)하여 치적(治績)이 있었음에 그 지방 백성들이 청덕비( 德?)를 세웠다. 임금님이 장하게 여겨 대간(臺諫):임금의 측근에서 그릇됨을 간하는 신하)으로 부름에 유태재 방선(柳泰齋方善)이 전별시(餞別詩)로 석별하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명령을 이어 받아 임금님을 뵈려함에 말이 나는 것 같이 빠르구나! 이르는 곳, 누대 마다 취해서 시를 쓰겠구려!
임금님이 만약 민간일을 물으시거든 흰 터력, 귀양온 신하가 귀밑이 흰 실 같다고 하여주게"하였다.
일찍 양주(楊洲)로부터 비로소 영천전촌(永川錢村)에 이사 하였다가 다시 노항(魯巷)으로 이거(移居)하였다. 묘소(墓所)는 자양면(紫陽面) 증산해좌(甑山亥坐)이며 묘비문(墓碑文)은 유천 이만규(柳川李晩奎)가 지었다. 원래(元來) 증산재(甑山齋)가 증산하 토골에 있었는데 영천댐 수몰(水沒)로 인하여 삼매동(三梅洞) 봉암(蜂巖)으로 이건(移建)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