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본관은 함창(咸昌)이며, 영춘군(榮川郡: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에서 출생하였다. 1374년(공민왕 23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라 강원도 관찰사(觀察使)를 역임하였다.
조선조 태종때에 효행(孝行)으로 정려(旌閭)되었는데 아래와 같이 효행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어버이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집을 떠나 관(官)에 나가 있을 때 수 백리 먼곳에서 사환(使喚)을 보내어 본인 대신으로 문후(問候)하였으며, 평소 함께 있을 때는 어버이를 식사를 한 후에야 비로서 자신이 식사를 하는 효심을 하였다고 한다.
그 때는 상례(喪禮)가 쇠퇴하였으나 그는 고례(古禮)에 따라서 친상(親喪)을 당하여 여묘(廬墓)를 3년간이나 했는데 매일 세 번씩 왕래하면서 갈때는 길 오른쪽에 지팡이를 짚고, 올때는 길 왼쪽에 지팡이를 짚고, 길 중간에는 발자국을 내므로서 삼로(三路)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래서 호(號)도 삼로(三路)라고 했다. 더욱 진양(晋陽)관 선산(善山)의 수령(守令)으로 재직시에는 치적(治積)이 많았고, 관찰사로서 관동지방(關東地方) 순찰 때도 치적이 현저하여 명관록(名官錄)에 올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