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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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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범모자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조선 순조 임금 때의 일이다. 안동시 노하동에 김해 김씨 성을 가진 진대란 사람이 처자와 함께 살고 있었다. 가장인 진대가 갑자기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부인인 손씨는 남편의 병을 고치겠다는 일념에서 그 날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 성범도 어머니를 본받아 열심히 집안 일을 도왔다. 모자는 힘이 자라는 데까지 수소문하여 병에 좋다는 약은 다 구해 올렸지만 진대의 병은 낫지 않고 날이 갈수록 심해 갔다. 이에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소생시킬수 없다고 생각한 모자는 칠성님께 빌기로 결심하고 인근 송현동 냇가에서 모래를 가져와서 뒤뜰에 칠성당을 지어 백일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손씨는 식음도 잊은 채 정성껏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시작한 지 백일쯤 되는 어느 날 손씨는 추위와 허기에 지쳐 쓰러져 곤히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런데 꿈에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백발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빨리 약물을 떠다가 남편의 병을 고치지 않고 무엇 하느냐?"
하고 호통을 쳤다. 이에 깜짝 놀란 손씨는
"어디에 약물이 있는지요?"하고 반문했다. 그러나 노인은,
"안동시 풍산면 막곡동 석문산 바위 밑에 약물이 있다."하고 일러 주었다.

이에 소스라쳐 잠이 깬 손씨는 그 길로 석문산을 향해 약물을 뜨러 갔다. 노하동에서 석문산은 5리가 넘는 길인데 눈마저 내려 얼음을 밟으며 내를 건넜다. 그때 어디서 날아왔는지 수백 마리의 까마귀가 울부짖고 있었다. 손씨가 앞을 보니 깨어진 얼음 사이로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머리를 내놓고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손씨는 까마귀에게 감사하며 남편에게 고아드리려고 잉어를 잡은 후 다시 약물을 뜨려 석문산으로 향했다.

눈을 혜치며 석문산을 오르는데 갑자기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앞을 가로 막았다. 손씨는,
"호랑이님 ! 이 야위어 빠진 늙은이를 잡아먹은들 무슨 큰배가 부르겠습니까?
내가 여기서 죽는 것은 괜찮으나 우리 남편에게 약물을 떠다 주어서 남편의 병을 낫게 한 후에 나를 잡아 먹으십시오."하고 간절히 호소했다. 이 소리를 듣은 호랑이는 큰 하품을 하며 꼬리를 흔들며 길을 비켜 주었다.

한참동안 바위 밑을 혜매며 약물을 찾던 손씨는 한 바위 밑에 이상한 풀이 돋아있고 약수가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손씨는 이것이 꿈에 노인이 일러 준 그 약수라 생각하고 그릇에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약물과 잉어를 먹은 남편은 사흘만에 깨어났다. 그 길로 차차 남편의 병은 차도가 있었다. 약물이 효험이 있는 것을 안 모자는 매일 석문산으로 달려가 약수를 떠다 먹이고 두 모자의 지성으로 가장인 진대의 병은 씻은듯이 나왔다.

그리고 지극한 정성으로 남편의 병을 낫게 한 손씨 부인의 훌륭한 덕행과 아들 성범의 효성이 조정에 까지 알려지고 1892년(고종 29년) 성범에게는 조봉대부동통교관이란 작위를 내림과 동시에 부인에겐 열녀, 아들에겐 효자로 다 함께 정려했다. 지금도 안동시 노하동 마을 한복판에는 손씨 부인의 덕행과 아들 성범의 효행을 기리는 정렬효각이 서 있어 후세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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