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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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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원

경인/만취당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1539년(중종 34년)
시대

상세설명

1539년(중종 34년)10월 2일 점곡면 사촌동에서 태어난 김사원은 송은 광수의 증손이다. 자는 경인(경인), 호는 만취당(만취당), 관향은 안동, 공은 천성이 인자하여 이웃에 어려운 이를 보면 부모한테 알려 힘껏 도와 주었다. 일찌기 여러 아이들과 놀적에 가마귀떼가 부르짖어 가보니 길가에 얼어 죽은 사람이 있어 측은하게 여겨 옷을 벗어 덮어주고는 집에 달려와 어른들에게 알려 하인으로 하여금 장사 지내게 했다. 사친(事親)에 있어 효도를 다해 무고히 부모 곁을 떠나는 일이 없었으며 친척한테도 은의를 베풀고 원근 출입시는 매양 공손하고 겸양하여 노소로부터 사랑과 공경을 받았다.

늘 송은공을 받들고 의방지훈을 들었으며 자라서는 퇴계 이황에세 수업하여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오로지 사람으로서 닦아야 할 학문에만 전념했다. 스승(퇴계)이 돌아가자 흑립소의(黑笠素衣)로 3년간 즐거운 데를 가지 않았다고 한다. 흉년이 들어 밥을 굶는 이에게 식량을 빌려줘 가난으로 갚지 못하면 여럿이 보는데서 차용증서를 불태워버려 원근에서 공의 집을 '김씨 의창'이라 일컬었다.

임진란때 의성 정재장으로 활약하고 난후 이재민은 구하니 그 혜택을 입은 이가 농사지어 사례하고자 했다. 그는 웃으며 "먹지 못하는 여러분을 생각하여 준 것이지 갚기 바랐겠느냐"고 타이르곤 그냥 돌려 보냈고 한번은 저물어 구걸온 이가 있어 살펴보니 나병환자라 꺼리지 않고 방에 들어오라고 하여 잠재워 보냈는데 얼마 후 한 미장부가 찾아와선 전날 나환자로 변장해 왔던 사람이라면서 그를 시험해본 것이라 하며 정중히 사과하곤 "후세에 복많이 받으리라"는 말을 남긴 뒤 자취를 감춘 적도 있었다. 집 옆 오래된 소나무는 늦도록 푸르다고 '만취당'이라 자호했다. 1601년(선조 34년) 6월 14일 63세로 별세, 부인은 영양남씨, 일직임씨, 안동권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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