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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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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원

복초/귀암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1710년(숙종 36년)
시대

상세설명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서 죽었을 때에 온 세상은 입이 있어도 모두가 벙어리가 되었다. 무서운 당쟁의 소용돌이는 왕실에까지도 화를 입었으니 누가 감히 나서랴. 그러나 충의에 빛난 영남 땅에서 목숨을 걸고서 곡반에 나선 이가 있었으니 바로 경상도 중군 김복원과 대구 진사 조춘경이 그들이었다. 이들은 경상감영의 한 복판에서 그것도 다른 곳 아닌 공관서 감행 거사하였다. 김복원은 제승당에서, 조춘경은 대구 공관에 달려가서 거적자리를 펴고서 크게 통곡하니 세상은 놀라고 그들의 충의는 죽어간 세자의 비운과 함께 잊지 못한다.

1710년(숙종 36년) 2월 15일에 김복원은 우리 의성땅 금성면 초전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복초, 호는 귀암이다. 후조당 부필과 임진왜란때에 순절한 의병장 해는 그의 조상으로 이름이 높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질이 영특하고 기상이 뛰어나 아이들과 놀 때는 항상 대장노릇을 하며 진법을 가르치니 식자들은 모두가 이상하게 여겼다. 7세에 아버지를 잃는 슬픔을 당하고 자라서는 가난한 가정에서 어머니를 잘 봉양하여 칭찬을 받았다.

가정에서는 그에게 유업을 잇도록 권하였으나 뜻한 바 있어 창검을 짚고 궁마의 업(弓馬의 業)을 택하기로 결심했다.
1740년(영조 16년) 서른 한살에 증광 무과에 급제하니 천성이 강직한 그는 충의의 출사 길에 나서게 된다. 영조 25년 정월에 임금이 명정전문에서 조하를 받은 뒤에 백관 반열이 늘어선 가운데에서 백성들의 질고를 듣고 싶다고 하였으나 아무도 말이 없이 숙연하였다. 그 때에 도총부의 도사로서 뒷 자리에서 감히 앞으로 나아가 주상의 앞에서 엎드려 충직하게 백성의 질고를 적나라하게 고하는 이가 있었으니 이가 바로 김복원이었다.

아무도 충직하게 비정의 참상을 말하여 주는 이 없어 임금은 추연(楸然)히 실망하고 있던 순간에 그의 충언은 여간 반갑지 않았다. 일어나서 고하기를 명하고 자세히 그 말을 다 들은 임금은 그의 이름과 출신을 물어서 듣고는 답하기를 "너는 성실한 고장 영남 사람답고 성심이 깊은 너의 충언을 잘 들었다."고 치하하였다. 이 외에도 진법을 어전에서 설명한 일이 있다. 안동부사와 거제부사를 거치는 외직에서도 선정을 베풀어 백성의 고역을 감하였고 집에 돌아올 때에는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 가난하게 모시던 지난날이 한 깊어 새옷을 지어 불살라 드린 일도 있다.

세자의 호위장을 지낼 때에는 추운 겨울 날 한 밤중에도 충직하게 입시하여 깊은 신임을 받았고 1762년(영조 38년) 봄에는 경상도 중군으로 자리를 옮겨 대구에 내려왔다. 그 해 윤 5월 당쟁은 극한에 치달아 노혼한 영조는 장헌세자를 죽였고 전국에 금령을 내려 곡반도 못하게 하였다. 비분한 백성의 뜻이 하늘에 닿이나 모두가 할 말을 잃었는데 그는 국록을 받는 관원으로서 감히 곡반의 예를 치루었으니 목숨을 내어 걸고 나선 충의라 하여 지나침이 없으리라.

예나 지금이나 염량(炎凉)세태일 수록 간교한 인간들은 기회를 잽싸게 잡으려는것, 그의 부하 비장(裨將) 한 놈이 즉각 관찰사에게 달려가 고변하였다. 신고에 접한 관찰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심 김공의 충의에 깊은 존경을 보내고 변화 무상하는 정국의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음은 더 말할 여지도 없다. 수 일간을 통곡하며 소식(素食)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환로의 영광을 스스로 끊어버리고 심상으로 삼강의 뜻을 닦으며 초전의 여생을 시작하였다.

영조 임금도 그의 소행을 곧 크게 후회하여 생각할수록 슬프다고 세자에게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고 조정에서는 그를 다시 불러 안동 중군으로 삼고자 다음 해 10월에 교지를 보냈다. 그의 뜻은 굳어 세상을 담쌓고 지내려는 마음에 변함이 없으니 사도세자의 충신이라 이름하여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1763년(영조 39년) 12월 10일에 세상을 등지니 향년은 54, 유택은 이웃 고을 의흥땅 세림산이다. 고종 36년 기해에 사도세자의 묘호를 장조라 추숭하고 이어서 그 때의 충신들에게 특보(特보) 증직하니 그에게는 가선대부군부협판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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