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조선 철종 때 지품면 율곡동에 살았다. 호는 양지(養志)라 했고 어릴 때 부모님 말 잘 듣고 공부도 잘 했다. 1903년(계묘년) 아버지가 병환으로 위독하자 손가락을 짤라서 그 피를 입에 넣어 소생케 하였다.
그 후 10년이 지나 최남수가 객지에 가 있을 때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밤중에 돌아 오는 길에 호랑이의 가호를 받아 백오십리를 와서 아버지를 뵈옵게 된 것도 모두 효심이 지극한 결과라고 했다. 그가 죽자 고종께서 홍문을 세우도록 했고 병조참판겸 동지중추의 금부사라는 벼슬을 내려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