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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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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정씨3의사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고려 말기, 한 때 경산에 유배된 것이 연분이 되어 경산시 상방동에 은거한 양헌 정연의 후손에 상천 변함, 동암 변호, 방주 변문의 3종반이 있었다. 변함, 변호 형제는 일찍이 서로 이어 김제훈도를 역임한 바 있으며 임기를 마치고 향리로 돌아와 종제 변문과 함께 동산 아래서 강학하였다. 그러면서 향내 사림과 힘을 합쳐 따로 고산서당(구 고산면 성동의 고산)을 창건했다.

임진란이 발발하여 왜군이 파죽지세로 이 지역에도 밀어왔다. 그때 경산 현령은 재빨리 도주하였으니 그대로 수모를 당할 수 없다고 일어선 것이 경산의 의병이었다. 당시 정씨 3종반은 안심의 최응담과 상방의 진섬, 진엽 형제, 고산의 박응성과 종제 박응량, 압량 삼풍동의 승적과 합세하여 남천면 구일동의 금성산성에서 또는 고산 욱수동의 망월산성에서 왜군에 대항하였다. 조령에 따라 최응담, 진섬 등은 연천쪽으로 가고, 박응성, 정변함 등은 성주 사원으로 이진하게 되었는데, 적의 대군과 격전 끝에 박응성 4부자가 순절하고 정씨 3종반은 잔병을 이끌고 곽망우당 휘하에 합류하여 활약하게 되었다.

경산에서의 의거는 비록 수에 있어 적었지만 다른 지방을 앞질렀다. 그러므로, 난중에 역시 의병장을 지냈고, 난후 영남안찰사로 민정을 살핀 일이 있던 우복 정경세가 "慶山如斗小邑首先倡義(경산은 오목한 작은 고을이지만 남 먼저 창의하였다)"고 찬탄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에 의병대장 곽재우가 화왕산성에 웅거하자 3종반은 불굴의 정기로 용약 합세하였다. 왜군이 물러가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그간의 공을 앞세우지 않고 공훈도 탐함이 없이 향리의 강당으로 돌아왔다.

특히 정변함은 고산서원을 중건할 때 도감을 맡아 향토 문교에 공헌하였다. 나라가 위태할 때는 칼과 활을 잡았고, 평화로운 시대에는 붓을 잡아 학업을 닦고 교화에 힘쓰며 여생을 보내니 세인들은 이들을 삼의사(三義士)로 높이 추앙하였다. 후손은 경산시 백천동과 옥곡동, 압량면 인안동, 그리고 대구시 이천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3의사를 추모하여 1948년 옥곡동에 삼의정(三義亭)을 창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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