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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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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리

원지/사암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선생은 휘가 만리(萬里)이오 자는 원지(遠之)이며 호는 사암(思庵)이고 시호는 충장(忠壯)인데 본관은 영양(穎陽)으로 판도승상(版圖承相)의 10세손이다. 천씨(千氏)는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97본관으로 나타나 있으나 모두 영양 천씨 의 세거지명을 나타낸 것이다. 천씨(千氏)는 원래 중국의 성씨로서 시조 천암(始祖 千巖)은 명나라 초에 조신을 지냈고 그 후손이 영양에서 세거 하였다고 한다.

중시조 천만리(中始祖 千萬里)선생은 명나라 말기에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태청전 수위사 겸 총독오군사(總督五軍師)를 역임하고 1592년(선조 25년)의 임진왜란 때 영양사(領糧使)겸 총독장(總督將)으로 아들 상(祥), 희(禧) 형제와 함께 명장 이여송(明將 李如松)을 따라 우리나라에 출정하여 군량수송을 담당하였고 평양(平壤), 곽산(郭山) 등지에서 대첩(大捷)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그 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도 마귀(麻貴)와 함께 와서 직산(稷山), 울산(蔚山) 등지에서 싸워 또 전공을 세웠는데 명나라 군사가 회군(回軍)할 때 그대로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하니 조정에서 가상(嘉尙)히 여겨 자헌대부 봉조하(資憲大夫 奉朝賀)로 화산군(花山君)에 봉 했고 조선 숙종(肅宗)때 선생의 전공을 길이 빛내기 위해 대보단(大報壇)을 설단(說檀)하여 종향(從享)케 했고 전국의 10여개 서원에 향사(享祀) 되었다. 그 중에서도 고성의 호암사(虎巖祠), 청도의 황강사(皇岡祠) 등이 더 유명 하다. 뒤에 충장(忠壯)이라. 시호(詩號)가 내렸다.

선생의 큰 아들 천상(千祥)선생은 1592년(선조 25년)에 아버지인 선생을 따라 임진왜란 때에 참전 하였고 1597년(선조 30년)의 정유재란(丁酉再亂)에도 혁혁한 공훈을 세워 벼슬이 한성부 좌윤(漢城府 左尹)에 이르렀다. 또한 둘째 아들인 천희(千禧)선생은 아버지 천만리(千萬里)선생과 형인 천상(千祥)선생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와 임진왜란(壬辰倭亂)과 정유재란(丁酉再亂)에 전공이 컷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벼슬은 장령(掌令)을 지냈고 뒤에 형조참의 (刑曹參議)에 추증 되었다.

참고문헌 : 인명대사전, 한국인의 족보, 도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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