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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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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씨부인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주씨 부인(朱氏夫人)은 본관이 웅천(熊川) 주씨로서 웅성군(熊城君) 자정(子精)의 14대 손인 생원 주이지(朱以智) 공과 그의 부인 영천 최씨 사이에서 1693년(숙종 19년) 효령현 내곡리(乃谷里 : 現 장기동(場基洞))에서 태어났다. 주씨 부인은 어렸을 적부터 남달리 온순한 성격과 범절이 출등(出等)한 규수로서 나이16세에 소소본면(召召本面) 부황리(扶皇里)에 홍재적(洪載績)에게 시집와서 시부모(媤父母)님 섬김이 극진하였다.

홍재적의 부는 대호군(大護軍) 도해(到海)공이며 조(組)는 직장(直長)중익(重益) 증조(曾祖)는 호가 병애(屛涯)이고 선교랑(宣敎郞) 성현찰방(省峴察訪) 인갑(仁甲)의 후이다. 주씨 부인의 가문(家門)은 향반(鄕班)에 불과 하였으나 학문을 좋아했고 효친경노(孝親敬老)하는 수신가(修身家)였다. 홍씨 가문은 도해공 삼 형제는 우애가 있고 학문을 좋아하고 맏형은 성격이 강직(剛直)했으며 아우 약해(若海)공(公)과 조해(朝海)공(公)은 어릴 적부터 용기(勇氣)가 뛰어나 불의(不義)를 보고는 참지 못하는 충효(忠孝)의 집안이었다.

주씨 부인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조석(朝夕)으로 문안(問安) 드리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공양(供養)함을 지성(至誠)으로 하였다. 시아버지 도해(到海)공이 80세에 이르도록 지병(持病)이 낫지 아니 하였는데 밤낮으로 그 곁을 떠나지 아니하며 약을 다려 올리는 일과 간호에 정성을 다하기를 몇 해를 두고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효성이 지극한 탓으로 시아버지의 병은 점차 낫게 되었다. 이윽고 시아버지가 1745년(영조 21년)에 운명(殞命)하자 주씨 부인은 땅을 치며 통곡하여 마지않았으며 기절하여 정신을 잃기도 하였다. 3년 동안 죽(粥)만 먹고 연명하였고 일체 다른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시부모 생전(生前)에 효성을 다하고 사후(死後)에도 예(禮)를 다하였으니 그의 효성(孝誠)을 영조대왕께서 들으시고 1743년(영조 19년) 정려를 내려 귀감(龜鑑)으로 삼게 하였다. 홍재적(洪載績)의 자(字)는 여용(汝用)이며 1693년(숙종 19년)에 나서 1781년(정조 5년)에 졸 하니 향년이 88세이다.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증직(贈職)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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