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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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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신

종진/염와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1765년(영조 41년)
시대

상세설명

관향은 한양, 자는 종진(宗鎭)이요 호는 염와(恬窩)이니, 조상순(趙尙純)선생의 아들로서 1765년(英祖 41年 乙酉) 영양면 사평리(沙坪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글을 한번 읽으면 모두 외우는 빼어난 총명이었다. 문학에 일찍 익숙하고 시를 잘 지어 스승인 족장(族丈) 만곡(晩谷 趙述道)선생의 소중히 여김을 받았다. 1792년(正祖 16年 壬子) 조정(朝廷)에서 대각(臺閣)의 신하인 이만수(李晩秀)를 안동 도산(陶山)에 파견하여 별과(別科 일명 陶山科) 시험을 보일 때에 영남의 재사(才士)들이 운집(雲集)하여 응시한 자리에서 조성신(趙 城臣)이 수석(首席)을 차지하였다.

당시(當時) 28세였는데 선배 여러분이 모두 칭송하고 앞길을 촉망(囑望)하였으나 성시(省試)에서 불행히 실패하였다. 그 후에 더욱 관직에 뜻을 두었으나 33세에 우연한 질병(疾病)으로 눈이 어두워졌으니 이야말로 불운(不運)한 천재라 하리라. 실명(失明)한 후에 마음 울적할 적에 전날 눈 밝을 때에 본 산천과 누정(樓亭)과 화초와 새와 곤충(昆蟲)에 이르기까지 이를 시와 노래로 읊어 울울한 회포를 푸니 한결같은 절묘한 시가(詩歌)였더라.

선생은 가요 문학(歌謠 文學)에 뛰어나서 일찍이 도산서원에서 놀던 광경을 추억하고 도산별곡(陶山別曲)을 지어 부르니 여러 부녀자들에게 전해져 노래 부르게 되었었다. 그 외에도 연예 별곡(蓮藝 別曲), 화조가(花鳥歌), 자치가(雌雉歌), 우미인가(虞美人歌)등의 많은 가사(歌詞)가 있어 오래도록 전해왔으나 아깝게도 지금은 모두 실전(失傳)되고 말았다.

우리 고장 영양은 예로부터 유문향(儒文鄕)이라 오언칠언(五言七言)의 한시(漢詩)와 산문(散文)에 빼어난 글 선비들이 허다(許多)하였으나 가요작가(歌謠作家)로는 선생이 독보적 존재(獨步的 存在)였던 바 그 주옥(珠玉)같은 가사가 모두 실전 되었음은 애석(哀惜)하기 그지없다. 염와시집(恬窩詩集) 한 권의 유작(遺作)이 있다. 1835년(憲宗元年 乙未)에 별세하니 향년 71세이다.

참고문헌 : 영양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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