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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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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술도

성소/만곡
활동시기
미상
본관
출생시기
1729년(영조 5년)
시대

상세설명

관향은 한양(漢陽)이요 자는 성소(聖紹)이며 호는 만곡(晩谷)이다. 초당 조희당(草堂 趙喜堂)선생의 아들로서 1729년(英祖 5年 己酉) 일월면 주곡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재질이 빼어나 어른들의 제사 드리는 본을 받아 놀이를 할 때에 제문을 지어 제향(祭享)하니 어른들이 보고 6세 어린이의 어른스러운 의젓한 거동과 제문 짓는 글재주에 깊이 감탄(感歎)하였다. 이처럼 천재적인 글재주로서 한때는 청량산에 들어가서 학문 연구에 몰두(沒頭)하였다. 젊은 나이로 고장의 학도들에게 강학(講學)할 때에 퇴계 선생의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조목(條目)따라 논변(論辯)하니 원로스승과 여러 선비들이 탄복하고 장차 영남의 큰선비(巨儒)가 될 것이라고들 기리었다.

1735년(英祖 11年 乙卯) 증광별시(增廣別試) 때에 어전(御前)에 나아가 강의(講義)하였다. 선생은 여러 유생들과 더불어 향약(鄕約)을 지어 미풍양속(美風良俗)을 가꾸어서 이웃마을과 내 고장 모든 사람의 모범이 되었다. 무자(戊子)년에는 관동팔경을 유람하여 수려(秀麗)한 근역 강산(槿域江山) 풍물(風物)을 시 지어 읊으면서 심신을 수양하였다.
선생의 만년(晩年)에 문인(門人)들이 원당리(元塘里)의 선유굴(仙遊窟)위에 강정(江亭)을 지었으며 그 후에 주곡동 용봉(蓉峯) 아래 만곡정사(晩谷精舍)를 건축하였으니 그 뜻은 뒤늦게 서야 견문(見聞)하고 옹졸하게 선비의 도를 닦았다는(晩聞拙修)것인바 이로부터 만곡(晩谷)이라 스스로 호(號)를 지었다. 이는 선생의 겸허(謙虛)한 인품의 표현(表現)이라 하리라.

1802년(壬戌)에 강정(江亭)을 주곡동으로 옮겨 세워 미운당(媚雲堂)이라 현판(懸板)을 붙이고 그 이듬 해 1803년 별세하니 향년 75세이다. 만곡(晩谷)선생은 수일(秀逸)한 재질과 고매(高邁)한 학문과 덕행으로써 이 고장의 사표(師表)다운 선비의 전형(典刑)이다.

참고문헌 : 영양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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