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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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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환

석보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창녕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자는 석보(石堡) 관향은 창녕이고 자계 조용환선생의 6세손이며 영천군 자양면 거동리에서 조병전의 장자로 태어났다. 조상환의사는 전통적인 유가게 태어나 조부와 부친이 일찍 돌아가서 조모와 모친의 손에서 자라났다.

어릴적부터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는 성격에 옛 영웅들의 애기를 좋아 했다. 그때 우리 나라는 왜놈의 침략의 손이 뻗쳐 1905년 을사 보호 조약이 맺어져 나라 안은 물끓듯이 어지러웠다. 이 때 고종 임금을 시종하던 동엄 정환직 의사는 고조의 밀지를 받고, 국권회복을 위해 서울에서 그의 아들 단오 정용기는 고향인 영천에 보내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상환의사는"대장부가 이런 시국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이 나라의 백성된 의리를 다할 때다"고 동지를 규합하여 이웃 동리인 검단동에 있는 산남의진에 남 먼저찾아 갔다. 보현산 주위의 포수와 뜻있는 사람들을 권유하여 입진시켰다.

1906년 3월 정용기 의사를 모두 의병장으로 추대할제 공은 도포장의 직책을 맡아 여러 곳에서 일군과 싸웠다. 그 해에 의장이 경주 진위대의 꾀에 붙잡혔으나 다음 해인 1907년 4월 다시 진용을 가다듬어, 영일, 청하, 죽장, 영천, 자양에서 전과를 올렸으나 그해 9월 1일 영일 입암전투에서 실패하여 의장이 전사하고 말았다. 이에 동엄 정환직의사가 의장으로 추대되어 진세를 정비할제 공은 화산 지역에서 신녕, 의흥, 군위, 의성 지역을 격파토록 했다.

그러나 그해 겨울에 불운하게도 정 환직의장이 다시 순절하고 공은 청송에서 왜적에게 붙잡혀 청송, 안동, 의성등지에 끌고 다니며 항복하도록 권유하였으나 듣지 않고 군위 효령에서 대변본다 속이고 간수하는 왜병을 차죽이고 달아나다 왜병의 총알에 맞아 효령장터 뒷산에서 1908년 2월 23일 장열하게 순절하다.

미망인 임(林)씨는 천신만고 끝에 시신을 찾았으나 불량배들의 시체 수호 연료대와 매장할 때 술값을 요구해 왔다.
임씨는 "나라를 구하려다 죽은 의사의 옷을 벗기고 장례비를 받으려는 자는 왜놈보다 더 악독하다."고 꾸짖으니 마을 노인들이 그 연유를 듣고 임씨를 위로하고 청년들을 시켜 시체운반에 협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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