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자는 자견(自遣) 호는 양계(養鷄) 본관은 오천이다. 1618년 진사에 뽑히고 1627년 문과에 올라 부사(副使)에 이르렀다. 병자호란 때 공이 부원수(富源帥)가 되어 향병을 모집하는데 종사하여 도왔고 1627년에 이르기까지 여러차례를 주종사하여 도왔고 1637년 이후 1654년에 이르기까지 여러차례를 주군(州郡)에 수령(受領)이 되었으나 사퇴하고 돌아 왔다. 돌아올 때에는 행장이 씻은 듯이 간단하며 다만 서책만 두어집 있을 뿐이었다. 만년에는 사환에 뜻이 없어 주자서와 근사록 등의 책을 취하여 잠심탐구하여 잠시라도 서책을 놓지 않았다. 사후에 대구 청호서원에 배향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