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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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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상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공은 영일인(迎日人) 증 이조참의(贈 吏曹參議) 정유한(鄭維翰)의 손자로 1649(인조 27)년 10월 16일에 김천 봉계에서 태어났다. 공은 어려서부터 의협심이 강하고 의리를 소중히 여겼으며 옳은 일에는 자신의 뜻을 절대로 꺾지 않았다고 한다.

숙종조에 무과(武科)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으로 있을 때인 1689(숙종 15)년 기사환국(己巳換局:장희빈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한 이로 일어난 사건) 이후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를 폐하려 하자, 숙종 임금 앞에 나아가, "국모를 함부로 폐함은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라고 사흘 낮밤을 대궐에 엎대어 눈물로 그 부당함을 간하였으나 숙종은 듣지 않았으며 도리어 송시열(宋時烈)은 귀양(같은해 죽임)을 보내는 등, 도저히 임금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음을 알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 봉계로 낙향해 버렸다.

귀향 후 숙종은 다시 민씨를 복위시키고 당시의 직신(直臣)들을 불러 관작을 내릴 때 수차 공을 불렀지만 벼슬길에 나가진 않았다. 1715(숙종 41)년 12월 20일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장재(壯材)를 초야(草野)에 묻고 의리를 받들어 야인으로 살다 갔다. 묘소는 김천시 대항면 태평산(太平山) 선영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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