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동래인 언충(彦忠)의 손으로 자는 계응(季膺) 호는 운계(雲溪)이다. 숙종조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정사(亭舍)를 구축하여 계적집(鷄跡集)과 존주록(尊周錄) 서책을 소장하고 후학 양성에 노력하였으며 문장과 올바른 행실이 세상의 추앙의 대상이 되었다. 문집 상, 하권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1704년(숙종 30년) 문하생들이 모여 영상을 덕곡면 반성 1동 만하동(晩霞洞)에 모셔 형산사(刑山祠)라 한다. 정위가 행장기를 지었고 정종로(鄭宗魯)가 유허비명을 지었다. 숙종 2년에 문하생들이 영상(影像)을 만들었으며 사림이 향례를 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