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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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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3부자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삼부자가 국란을 당하여 목숨을 걸고 국토 방위에 공훈을 세웠으니 바로 화순인 최선문의 증손인 윤의 삼부자다. 아버지 윤공은 1566(명종 21)년 중왕동에서 태어났다. 1620(광해 12)년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훈련정에 이르렀다. 공은 힘이 천하에 자랑할 만하고 의협심이 강했다. 임진왜란 당시는 정기룡 장군의 선봉장이 되어 전공을 세워 원종공신에 올랐다. 1637(인조 15)년 작고하니 공조참판이 증직되었고 묘소는 농소면 축산에 있다.

맏아들 경운은 1596(선조 29)년에 태어나 자를 순서라 하고 1618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1633년 태천 현감으로 있을 때 상소하여,
"강화도로서는 오랑케를 막는데 적당한 곳도, 최선의 방법도 못 됩니다. 먼 훗날을 생각하여 남한산성을 수축하고 군장비를 준비하셔야 합니다."
라고 국방책을 올린 것은 공이 얼마나 국가 장래를 걱정했는지 알 수 있다.

3년 뒤인 병자호란 때는 만호로서 승군을 이끌고 위험을 무릅쓰고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이르니,
"오늘도 그대를 선전관에 제수한다. 그대가 내 뒤를 따르니 비록 죽더라도 무슨 유감이 있겠느냐!"
고 인조는 전날의 상소를 생각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다. 공은 병자호란 호종의 공으로 일등훈에 올랐다.

1647(인조 25)년에는 길주에서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키자 토벌에 나서 영국일등공신이 추증되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공은 평생을 국토 방위에 충성을 다한 무인으로 소임을 다 했다. 1660(현종 1)년 작고하여 농소면 축산에 잠들었다.

둘째 아들 기운 역시 급제한 후 벼슬이 당상에 이르렀다. 병자호란 당시는 형과 함께 힘을 모아 어가를 호종한 공으로 원종공신이 되어 세상에선 이 형제의 공훈을 일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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