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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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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화

대여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자는 대여(大輿)이고, 관향은 영양(令孃)이다. 고려 공민왕 때에 영천(永川)에서 태어났다. 성질이 범상하지 않았고 칼과 활을 잘 다루었으며, 국량이 넓었다. 포은(包銀) 정몽주가 중국에 사신갈 때에 함께 갔다. 조선시대에 벼슬이 강화부사를 거쳐 초토 영전사를 지내다가 병마 절재사가 되었다. 태종 8년에 왜적이 우리 국경에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였으므로 조전첩절재사가 되어서 경기 좌우도의 해변에 파견되어 왜적을 막았다. 그해 11월에 좌군동지총재가 되고 경기좌와도 수군도절재사에 겸직되었다.

1409년에 강화도 교동은 나라의 출입구가 되므로 해구들이 서울을 정탐할 때는 이곳을 이용하므로 군함을 정발하여 두는 것은 좋은 계책이나 황해도와 충청도의 바닷가에 왜적이 침입할 때는 즉시 군대를 출동시켜야 하는데 다만 군량의 창고가 이곳에 없으므로 아주 연안 수언 광주에 가서 군량을 갖고 와야 하기 때문에 적을 추적하는 좋은 기회를 많이 놓쳤습니다. 고려때에 국난을 만나 강화도로 피난을 와서 나라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군량을 이곳에 많이 준비하여 두었기 때문이옵니다. 청하옵건대 이 두읍에서 생산되는 곡식으로서 관청과 향교에 쓰는 경비를 제외하고 모든 창고에 있는 곡식을 육지로 옮겨 군자로 부속시켜서 해마다 산성에 쌓아 두었다가 뜻하지 않은 일에 미리 대비하소서 하였더니 임금이 그 계략이 훌륭하다 하고 즉시 시행하였다. 그 후 벼슬이 우군응양위와 우일번 절재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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