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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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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득

활동시기
통일신라시대

상세설명

신라 경순왕의 제 5자인 의성군(義城君) 석(錫)의 후예인 의(宜)의 자(子)로서 부친을 모시고 고령에 왔다. 공의 본휘(本諱)는 기지(麒芝)로서 1340년(충혜왕 원년)에 진사에 등재하였으며, 1364년 공민왕조에 서해도 관찰사로 왜구(倭寇) 토벌에 공이 있었고, 관(官)이 문하평리(門下評理)에 이르고, 정조사(正朝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공(公)이 상주목사(尙州牧使)에 있을 때 풍영루(風 樓)를 지어 목은이 기문(記文)을, 도은이 시(詩)를 지어 유명했다.

공(公)은 익재공신금자광록대부상서겸 판 개성부사(翼載功臣金紫光綠大夫尙書兼判開城府事)가 되었으며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으로 습봉(襲封)이 되니 의성 김씨에서 분관(분관)하여 고령 김씨의 시조이다.

후에 공은 정몽주의 일당이라 하여 이성계파에 의하여 유배되었다. 후에 충익(忠翊)의 시호가 내렸다. 식읍지(食邑地)는 쌍림면 안림동을 중심으로 사산곽내(四山郭內)가 공의 사패지(賜牌地)이나 부근 고곡동이 본래 역촌이라 자손들이 1509년경(중종 3년)에 현 개진면 양전종으로 옮겨 살게 되고 역은 안림동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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