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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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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량

중거/금계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자는 중거(仲擧), 호는 금계(錦溪),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황치(黃穉)의 아들로서 1517년(중종12) 풍기 욱금동(郁錦洞)에서 태어났다. 일찍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서기 1537년(중종32)에 생원(生員)이 되고, 1540년 식년문과(式年文科)의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학유(學諭)를 거쳐 시평(詩平)이 되었으나. 전에 부탁을 거절 당했던 자가 언관(言官)이 되어 모함을 하자 중거는 외직(外職)을 자청하여 신령(新寧)현감으로 나갔다. 그후 단양(丹陽)군수를 지내고 1560년(명종15)엔 성주(星州)목사를 역임했다.

특히 퇴계 이황의 문하(門下)로서 주자학(朱子學)의 연구에 심취하여 스승 퇴계와 학문의 내용을 서장(書狀)으로 자주 문답하였다. 소수서원에 자주 출입하여 유생들을 격려했고, 풍기 금계동 금선계곡(錦仙溪谷)에 금계정사(錦溪精舍)를 짓고 후학생들의 교육에 힘썼다. 1563년에 병으로 돌아가셨고 풍기의 우곡서원과 신령의 백학서원에 배향했었다. 저술로는 금계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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