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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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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간

공직/칠봉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장수
출생시기
1558년(명종 13년)
시대

상세설명

본관은 장수(長水)이고 자는 공직(公直)이며, 호는 칠봉(七峰)으로 방촌( 村) 희(喜)의 후손인 형조참판 지(贄)의 아들로 1558년(명종 13년) 12월 8일에 태어났다. 그는 기개(氣慨)와 도량이 단정 정중하고 풍채(風采)가 수려하며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경전을 가까이 하여 특히 시문에 명성이 높았다.

1605년(선조 38년)에 소과(小科)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라 빙고별좌(氷庫別坐), 광흥주부(廣興主簿)와 서헌부 감찰 형조좌랑을 거쳐 삼가현감(三嘉縣監)으로 있다가 나이가 많아 사퇴하였다. 그는 유성룡(柳成龍), 정한강(鄭寒岡)의 문하생으로 정우복(鄭寓伏), 전사서(全沙西) 이창석(李蒼石)과 도의로서 서로 교제하였는데 이때 세상 사람들은 이들을 상산사노(商山四老)라 일컬었다.

1592년 임진왜란을 당하여 도적 떼가 그를 죽이려 찾아와 칼로 베려고 할 때 의렬이 지극한 부인 권(權)씨가 몸으로 막고 온 몸이 유혈이 낭자한 모습으로 끝까지 힘껏 보호하니 도적도 부인의 의기에 감동하여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그 후 소백산중으로 피난갔을 때 친상을 당하여 전란 중인지라 어려운 살림에 장사를 지내기가 힘겨웠으나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장례의 예를 훌륭히 갖추었다. 특히 서애 유성룡은 그의 어려움을 어여쁘게 여겨 여러번 찾아와 도움을 주었다.

1656년 봄에는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돌을 뚫고 물길을 끌어내어 보(湺)를 설치하여 지금의 산북면 대상리 앞 들에 한해를 모르고 농사를 짓도록 하였는데 이 보가 지금의 산북면 대상리 대상보(大上湺)이다. 책자로 발간되지 않은 유고가 있으며 산북면 대상리에 있는 도천사(道川祠)에 입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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