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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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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섬

경명/돈암(또는 식암)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1544년(중종39)에 직장(直長) 황응규(黃應奎)의 아들로서 풍기군 백동(현 영풍군 풍기읍 백동)에서 태어났다. 정탁(鄭琢)의 문인으로서 1564년(명종19) 성균관(成均官)의 유생이 되고, 1570년(선조3)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하므로서 사간(司諫), 집의(執意), 도승지(都承旨)를 역임하다가 병조참의(兵曹參議)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임금을 호종(扈從)하였으며, 이어 모운사(募運使)로 군량수송에 공을 세웠으며 이어 호조(戶曹), 예조(禮曹), 병조(兵曹)의 참의(參議)를 거쳐 대사성(大司成), 부제학(副提學)을 역임했고, 호조, 예저의 참판(參判)을 거쳐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다.

1608년(광해군1) 영의정 류영경이 화를 입자 이에 연좌(蓮座)되어 파직당하므로서 고향에 돌아와 학문에 열중했다. 후에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增)되고 정익(貞翼)이란 시호를 받았다. 풍기 우곡서원에 제향(祭享)되었으며, 저술로는 식암집(息庵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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