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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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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뢰

응시/송강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1564년(명종19년)
시대

상세설명

홍천뢰 장군의 자는 응시요 호는 송강으로 부림인이다. 공은 고려 문하사인 경재선생의 5세손으로 1564년(명종19년) 3월23일 통정공 홍덕기의 맏아들로 율리에서 태어났다. 장군은 젊었을 때부터 활쏘기와 말달림에 재략이 뛰어나니 아무도 겨룰 자가 없었다. 스물 한 살때(1584년 선조 17년) 별시무과에 합격하였다.

1592년(선조 25년)공이 29세에 임진왜란을 당하니 조정의 방벽이 무너지고 조국의 운명이 바람앞에 선 등불과 같았다. 우국정신이 지극한 장군은 국가의 위기를 구하고자 하늘에 맹세하고 그 해 4월 19일 율리에서 의병을 일으키니 하룻동안에 300여 명이나 모이었다. 한편 가까운 마을에 격문(檄文)을 보내어 장사(壯士)를 모아 신령으로 올라온 왜적을 맞아 출진(出陣) 하였다. 장군은 적병 30여 명의 목을 베고 달아나는 적을 크게 무찌르니 각 처의 의병이 이 소문을 듣고 모여들어 그 수가 1500여 명에 이르렀다. 같은 해 5월 6일 대동(大同:영천지방)에서 왜적 우두머리급 다섯을 베고 또 한천(漢川:영천지방)에서도 적 우두머리 일곱을 베니 군용(軍容)이 크게 떨치었다. 5월 22일에는 왜병이 소계(召溪:효령면)에 진(陣)을 치고 있는 것을 장군이 가서 크게 무찌르고 창검과 마필(馬匹)을 많이 노획했다.

한편 이때 영천 성내(城內)에는 적병 2만여 명이 머무르고 성벽을 굳게 지키며 밤이면 촌락으로 나와 살인과 노략질을 일삼고 낮에는 성중(城中)에 깊이 숨어 나오지 않으니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장군은 병사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성안의 적들은 그 수가 많아 대적하기가 쉽지않다. 그러니 화공(火攻)을 해야 할 것이다. 모두들 섶을 모아 오라" 화공할 준비를 갖추고 그달 26일에 다시 영천성을 포위하고 장군은 종횡(縱橫)으로 화살을 쏘니 성에서 떨어져 죽는 자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이튿날 장군은 "어제 패한 적은 반드시 피곤할 것이니 밤이 깊으면 적정(敵情)을 살펴 공격 계획을 세워야한다"하고 장사(壯士) 한 사람을 시켜 영천성 서쪽 산봉우리에 올라 살피게 하니 적들은 조양각(朝陽閣) 아래 모여 드러누워 있는자 혹은 앉아 있는 자들의 신음소리가 성밖에까지 들리었다. 장군은 여러장수들에게 이르기를 "이 때가 마땅히 화공(火攻) 해야 할때다"하고 조양각 서북쪽과 각 대문 밖에 모아둔 섶으로 일시에 불을 지르니 순식간에 화염(火焰)이 성내에 하늘로 치솟아 올라 적병들이 당황하는 틈을 타 일제히 들이치니 갈 바를 잃은 적들은 조양각 아래 강물에 뛰어내려 물에 빠져 죽는 자 불타 죽는 자 그 수를 헤아릴수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홍천뢰 장군의 용전(勇戰)으로 영천성이 회복되자 영남 좌우도(嶺南 左右道)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후에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같은 분은 공의 공적을 평하여 「쓰러지게 된 사직과 성령을 부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몸에 병이 있어 고향에서 요양 중에 있을때 논공행상(論功行喪)에서 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 불평도 없이 낮은 벼슬로 있었으니 그 얼마나 거룩한 정신인가! 그 후 왜병이 다시 쳐들어와 저유재란이 일어나자 장군은 또다시 나아가 싸워 크게 적을 무찌르니 그 공(功)으로 조정에서 훈련원정(訓鍊院正)을 제수하시었다. 공은 3년간 원정으로 계시다가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향리(鄕里)에 우거하셨다.

공은 춘추 51세로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두 번 다시 관직을 택하지 않으셨으니 실로 조국의 초석(礎石)이 되셨다.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놓였을때 오직 나라를 위하여 한목숨을 나라에 바칠 수 있었던 홍천뢰 장군의 그 크신 뜻을 기리어 1973년 5월 선생의 출생지인 부계면 대율리에 비를 세웠는데 비문의 큰 글씨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쓰시고 행적은 문학박사 고 이선근 선생께서 지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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