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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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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로(黃耆老)

고산(孤山)
활동시기
고려시대
본관
덕산
출생시기
1521년
출생지
1521년
시대
고려시대

상세설명

조선 중종으로부터 '세상에 제일 가는 초서의 성인이요, 왕희지(王羲之)가 죽은 뒤에 손꼽은 한 사람(天下之草聖 義之後一人 천하지초성 의지후일인)이라는 칭찬을 받은 분이 있으니, 본관은 덕산, 자는 태수이며, 호는 고산이다. 고려시대 덕풍군(德豊君) 언필(彦弼)의 후예로서 상정(橡亭) 필의 손자이며, 진사 옥의 아들로 진사 시험에 오른 것은 중종 29(1534)인데 그때 선생의 나이 14세였다. 중종 16년(1521)에 고아 망장(현 대망리)에서 출생했다. 진사에 오른 뒤로 고향에서 학문과 글씨에만 정진했으며 여러번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한번도 취임하지 않고 구름과 학 및 매화와 벗하고 후진을 가르치는데 낙을 삼았으며 전력을 다하였다.

그러므로 초서로써 세상에 이름을 떨쳤는데 중국인이 그의 글씨를 보고 '왕희지(王羲之)가 죽어 다시 환생했다'고 칭찬을 했기 때문에 뒤에 명종께서 그를 칭찬하여 그 귀절을 인용했던 것이며 마침내 그의 필적을 얻으려고 종이와 먹, 붓을 가지고 와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중국인들이 그를 일러 '동국의 장욱'이라고 칭찬한 나머지 초성(초서의 성인)이란 존칭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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