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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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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우정

정이/두곡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남양
출생시기
1593년(선조26)
출생지
봉화군 동양리
시대

상세설명

자는 정이(靜而)이고, 호는 두곡(杜谷)이며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1593년(선조26) 형조판서 홍가신(洪可臣)의 손자로 봉화군 동양리에서 태어났다. 1614년(광해군6) 과거에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으나 장인인 해주목사(海州 牧使) 최기(崔沂)의 해주옥사(海州獄事)로 체포되자 이에 연좌(連坐)되어 천안(天安)에서 옥살이를 하였다. 그후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모두 풀려 나와 여러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했다.

1636년(인조14) 병자호란 일어나자 봉화군의 문수산(文殊山)에 들어가 두문불출하고 학문의 연구에 전념하였을 뿐만 아니라 임금에 충절을 다하는 뜻으로 의관(儀冠)도 하지 않았고 색대를 하고 앉을 때는 북향(北向)을 하지 않았고, 때때로 서쪽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그리하여 영남의 절사(節士)로 불리어 졌으며 강흡(姜恰), 심장세(沈長世), 정양(鄭瀁), 홍석(洪錫)과 함께 태백오현(太白五賢)의 한사람이다.

인조(仁祖)가 그의 명성을 듣고 공조좌랑(工曹佐郞), 태인현감(泰仁縣監), 사재감사부(司宰監司簿), 대군사부(大君師傅) 등에 임명하였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고, 봉화뒤단물<後谷>에서 은거하다가 돌아가셨으며, 많은 시부와 명문의 글을 남기셨다. 1746년(영조22) 나라의 경연에서 임금에 건의함으로서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추증되었고 개절(介節)의 시호(詩號)를 내렸다. 문집으로 두곡집(杜谷集)이 있으며, 문산서원(文山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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