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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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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慧超,惠超)

활동시기
삼국시대

상세설명

신라의 스님으로 밀교에 밝았다. 일찍이 당나라에 건너가 광주(廣州)에서 남인도 출신으로 밀교에 밝았던 금강지(金剛智) 삼장의 제자가 되었다. 그 후 금강지의 권유로 나신국(裸身國)을 경유하여 해로로 인도 동해안에 도착, 서대령탑(西大靈塔) 등 오천축(五天竺)의 불적지를 두루 순례했다. 다시 북서(北西)로 가서 가섭미대(迦葉彌大)· 소발률(小勃律)· 건타라(健馱羅)· 오장(烏長)· 구위(拘衛)· 람파(覽波)· 사인· 토화라(吐火羅) 등지와 페르시아· 대식(大食)· 불림(拂臨) 등 지방을 다녔다. 여기서 다시 동쪽으로 안국(安國)· 조국(曹國)· 사국(史國)· 석라국· 미국(米國)· 발하나국(跋河那國)· 골토국(骨吐國)· 호굴국(胡窟國)· 소륵국(疎勒國) 등을 거쳐 10년만인 727년(성덕왕 26) 11월 당나라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가 있는 구자(龜玆)에 도착했다. 다시 안서(安西)로부터 동쪽의 여러 나라를 답사하고 장안(長安)에 돌아왔다.

이 10년 동안의 여행을 기록하여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3권을 지었으나, "일체경음의"의 제 100권에 그 음의(音義)가 실려 있어 서명만 알려져 왔었다. 1906년에서 1909년 사이에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Pelliot)가 중국 감숙성(甘肅省) 지방을 탐사하다가 돈황(燉皇)의 천불동(千佛洞) 석굴에서 앞뒤가 떨어진 책 1권을 발견함으로써 이 방면의 사료로서 중시되고 있다. 법현(法顯)의 "불국기"는 육지로 갔다가 바다로 돌아온 것이며, 현장의 "대당서역기"는 육지로 갔다가 육지로 돌아온 기행문이다. 그는 733년(開元 21) 1월 금강지 삼장으로부터 법을 이어받았으며, 740년(개원 28) 금강지가 장안 천복사(薦福寺)에서 "대승유가천비천발수만수실리경"을 번역할 때 필수(筆受)가 되었다.

그 뒤 774년(大曆 9) 불공(不空)삼장에게서도 법을 받아 불공의 6대 제자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산스크리스트 원문의 한역과 한자음사(漢字音寫)를 시도하였다. 780년(建中 1) 오대산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에 들어가 "대승유가대교왕경"에 서(敍)했다. 그 밖의 자세한 것은 전해지지 않으나, 그의 저술인 "왕오천축국전"의 일부와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와경서" 1편, "하옥녀담우기우표" 1권이 모두 현존한다. (왕오천축국전 혜초 [고병익, 한국의 인간상 3], 혜초 왕오천축국전 연구사량 [고병익, 백성욱 박사 송수기념 논문집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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