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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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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세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본관은 신천(信川)으로 고아 대망리에서 승랑장 인석(勝郞將 仁碩)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기골이 장대하며 학문이 탁월하여 모든 사람의 추앙을 받아 왔으나 벼슬에 뜻이 없고 항시 나라 안에 당쟁과 사화로 민심이 어지러움을 단신하더니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 때에 한 포의서생(布衣書生)으로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서서 조국과 민족을 구출할 의병을 일으켰으니 공은 '사람이 죽을 때는 의에 죽어야 한다'하고 허국신과 함께 의병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의병을 모아 금오산에서 적과 싸웠으니 처음에는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자 복병으로 여러번 적을 격파하여 식량과 가축을 탈환하고 무기를 빼앗아오니 한때 산성안에는 사기가 충천하였다.

금오산은 골이 깊고 요지이기는 하나 사방이 불과 50리 밖에 안 되니 적은 계령성주 등지의 대병력을 집결하여 철통같이 금오산을 포위하고 말았다. 성중의 형세가 위급하여지니 공은 유사 허국신(有司 許國臣)과 결사대 수십명을 데리고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 적진으로 진격하였으나 도리어 중과부족으로 붙잡혔다. 공은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적을 꾸짖다가 마침내 적의 칼에 쓰러지고 말았으니 성중에는 동요의 빛이 역력하였다. 적은 금오산성 안팎을 뒤져서 남녀노소 없이 모조리 살해하니 한그루 나무 한포기 풀도 성한 것이 없을 지경이었다.

참고문헌 : 임란사, 인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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