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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재

  • 지정 : 문화유산자료
  • 한자명 : 東山齋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인물_사건 > 인물기념 >
  • 시대 : 조선
  • 지정일 : 2006-02-16
  • 소재지 :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661
동산재(東山齋)는 광주이(廣州李)씨 칠곡문중(漆谷門中)의 대표적인 고건물(古建物)로서 삼대분(三代分)의 재사(齋舍)가 일곽(一廓)을 이루면서 건립순서(建立順序)와 세계(世系)가 역순(逆順)이면서도 건축구조상 정연(整然)한 위계성(位階性)을 가지고 있으며, 흔치 않은 품자형(品字型)의 재사(齋舍)이다. 중앙상단의 낙촌정(洛村亭)을 중심으로 좌우에 경암재(景巖齋)와 소암재(紹巖齋)가 위치하고 있다. 낙촌정(洛村亭)은 낙촌(洛村) 이도장(李道長)(1603~1644)의 휘행(徽行)과 의덕(懿德)을 기리기 위한 재사(齋舍)로써 1913년에 건립되었다. 공(公)은 석담공윤우(石潭公潤雨)의 차자(次子)로 태어나 종숙(從叔)인 주부공(主簿公) 영우(榮雨)에 입후(入後)하였다. 1630년에 대과(大科) 급제(及第)후 이조좌랑(吏曹佐郞) 부응교(副應敎)에 이르렀으며 증직(贈職)으로 좌찬성양관(左贊成兩館) 대제학(大提學)을 지냈다. 경암재(景巖齋)는 낙촌정(洛村亭)의 좌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낙촌(洛村) 이도장(李道長)의 장자(長子)인 귀암(歸巖) 이원정(李元禎)(1622~1680)의 유덕(遺德)과 공적(功績)을 기리기 위하여 도내(道內) 유림(儒林)의 뜻을 모아 1903년에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공(公)의 호(號)가 귀암(歸巖)이라 경모(敬慕)하는 뜻에서 재호(齋號)를 경암재(景巖齋)라 하였다.공(公)은 효종(孝宗) 3년(1652)에 대과(大科) 급제(及第)후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내고 영의정(領議政)에 증직(贈職)되었으며, 후에 문익(文翼)의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담장밖에는 귀암공(歸巖公)의 신도비(神道碑)가 있으며 비문(碑文)은 번암(樊巖) 채상국(蔡相國)(濟恭)이 찬(撰)하였다.소암재(紹巖齋)는 낙촌정(洛村亭)의 우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낙촌(洛村) 이도장(李道長)의 장손(長孫)인 정재공(鄭齋公) 이담명(李聃命)의 별사봉향(別祠奉享)을 위하여 1750년에 세운 재사(齋舍)이다. 소암재(紹巖齋)라 현판(懸板)함은 귀암공(歸巖公)의 덕업(德業)을 소술(紹述)하였다 하여 유림에서 지은 재호(齋號)이다. 재사(齋舍)뒤에는 한칸의 묘실(廟室)이 있다. 정재공(靜齋公)은 인조(仁祖) 24년(1646)에 태어나 현종(顯宗) 11년 (1670)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경상관찰사(慶尙觀察使),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지냈다.

학술자료

  • 1. 嶺南樓台志(1970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문경향토지간행회 / 발행처 : 聞慶鄕土誌刊行會
  • 2. 영남 남인의 정치 중심 돌밭, 칠곡 귀암 이원정 종가(2015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박인호,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 발행처 : 예문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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