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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손 교지

  • 지정 : 유형문화유산
  • 한자명 : 張伯孫 敎旨
  • 유형분류 :기록유산 > 문서류 > 국왕문서 > 교령류
  • 시대 : 조선
  • 지정일 : 2007-01-08
  • 소재지 :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471-3 (한국국학진흥원 보관)
장백손은 1471년(조선 성종 2)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487년 무과에 급제한 이래 여러 관직을 거치는 동안 많은 무공을 세웠다. 울진장씨는 김선평, 권행과 함께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고창에서 후백제군을 격파하며 통일에 공을 세운 태사공 장길의 후예다. 울진장씨는 장량수의 문과 급제패지(국보 181호)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고려시대까지는 대체로 문반가문으로 활약했으나, 조선시대 와서는 장백손의 교지 등을 통해 볼 때 무반가문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장백손은 특히 갑산진 만호로 재직하고 있을 때 여진족 오랑캐가 국경지방을 침입하여 경흥부사를 살해하는 등 만행을 일삼자 도원수 허종을 도와 격퇴하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 교지는 장백손이 무관의 관직을 거쳐 오는 동안 받은 것으로 1490년(조선 성종 21) 선략장군행충무위우도부사직(宣略將軍行忠武衛右都副司直)에 임명되었을 때 받은 고신으로부터 시작해서 1523년(조선 중종 18)에 마지막 관직인 어모장군행오위도총부경력(禦侮將軍行五衛都摠府經歷)에 임명될 때까지 그의 관력을 상세히 알 수 있는 것으로 총 31점이다. 교지의 평면형태는 모두 장방형으로 재질은 한지로 만들었으며, 문서에 주문방인이 찍혀있다. 31점 모두 한 사람의 관직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교지로 이렇게 많은 분량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게 남아있는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희귀하며, 특히 임진왜란 이전의 것이라는 점, 무반의 경력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현재 이들 자료는 안동에 소재한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되어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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