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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장씨 고산성파 소장 고문서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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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장씨 고산성파 소장 고문서

  • 지정 : 유형문화유산
  • 한자명 : 蔚珍張氏 古山城派 所藏 古文書
  • 유형분류 :기록유산 > 문서류 > 민간문서 > 분재기류
  • 시대 : 조선
  • 지정일 : 2007-01-08
  • 소재지 : 울진군 울진읍 읍내6길 16-2 (읍내리 472-1) / 한국국학진흥원 기탁 보관
울진장씨 고산성파는 낭장공파를 이룬 장인숙(張仁淑)의 계보를 잇는 장동유(張東維, 號 古山)의 후손들이다. 이 문파 소장의 고문서는 교지, 망기, 명문, 분재기, 서목, 소지, 시권, 완문, 입안, 전령, 첩문, 표기, 호구단자, 준호구, 양안, 입지 등 총 122점이다. 이들 자료는 시기가 확인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15세기 말에서 20세기 초(1487년~1901년)에 이르는 것들로 산만한 경향이 있지만, 이 가문에 속한 사람들의 학문적 교유관계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동향 등을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중에서 교지는 장백손(張伯孫)이 1487년(조선 성종 18) 무과에 합격하고 받은 홍패를 비롯한 교지 4점, 장희덕(張希德)이 1627년(조선 인조 5) 가선대부에 증직된 교지, 장위한(張偉翰)이 절충장군에 임명된 교지 등으로 그 형식이 단조롭고 자료적 가치가 희박하지만, 시기적으로 대부분이 임진왜란 이전의 것으로 자료의 희소성이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또한 명문류는 대부분이 가문이 인근의 전답과 가옥을 매입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이릉 통해 당시 재지사족으로서 그들의 경제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소지류는 전답 및 금전거래 관계와 투장(偸葬)에서 비롯된 각종 분쟁에 대해 울진 수령이 나서서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 대부분으로 그들의 경제적 기반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자료이다. 더구나 가문의 가족관계의 변화양상을 보여주는 호구단자는 노비를 주축으로 한 그들의 재산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자료이다. 특히 장동범(張東範)이 4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기간동안 3년마다 관아에 제출한 호구단자는 이 가문의 재산변동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향촌 재야사족의 경제동향을 계기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학술적 가치가 높은 자료로 평가된다. 현재 이들 자료는 안동에 소재한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되어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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