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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 북천교비

  • 지정 : 유형문화유산
  • 한자명 : 平海 北川橋碑
  • 유형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시대 : 조선
  • 지정일 : 2004-10-14
  • 소재지 :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366-5
조선 선조 36년(1603) 3월에 세워진 이 비의 석질은 자갈이 듬성듬성 박힌 사암이며, 이후 어느 시기에 깨어져 세 부분으로 분리되었다가 접착제를 이용하여 다시 붙였다. 비의 전면에는 평해군 북쪽 10리 월송 변에 하나의 사천(沙川)이 바닷물과 서로 통해 사시(四時)로 물어 넘쳐 민들의 일상생활과 상인들의 통행이 어려워 당시 평해 군수 조인징(趙仁徵)이 고을사람들과 의논하여 돌다리를 세움으로서 그간의 불편함을 해소하게 되었다는 건립경위와 만력(萬曆) 31년 3월일이라는 건립시기 및 공대주(供大主) 김홍수(金洪水)와 석수(石手) 황종이(黃從伊) 그리고 △응상(應上) 등 대시주(大施主) 71인의 원명과 추명을 새겨 넣었다. 배면에는 전면에 이어 황언정(黃彦?) 등 대시주 20인의 이름과 승려로 이해되는 역오(亦悟) 등 3인의 공양주(供養主)와 태인(太仁) 등 2인의 별좌(別坐), 화주(化主) 홍신(洪信)의 이름 등을 새겨 넣었다. 글씨는 해서체이나 간혹 초서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오늘날 자전에서 찾을 수 없는 글자도 간혹 있다. 이 비에 보이는 평해군수 조인징은 읍지에 의하면, 선조 32년(1599) 2월에 도임하여 선조 36년(1603) 3월 청원부사로 이배(移拜)되었다고 하므로 이 비는 그가 평해를 떠나기 직전에 세웠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비에 새겨진 사람들의 이름은 당시의 발음대로 기록한 점이 특이하다. 글씨는 정연한 행서체이나 간혹 초서를 사용하였다. 이 비를 통해서 17세기 초 이 지역의 지역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화주 91명의 인명 기록방식, 즉 발음대로 새긴 것은 국어학연구와 관련하여 자료적 가치가 적지 않다. 비의 위치는 원래 국도 7호선 내에 있던 것을 조금 벗어난 현재의 위치로 옮겨서 보존하고 있다.

학술자료

  • 1. 금석문 탁본조사보고서 경상북도 Ⅱ(2015년 발행)
    조사보고서 / 저자 : 문화재청,불교중앙박물관 / 발행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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