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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원당

  • 지정 : 문화유산자료
  • 한자명 : 慕遠堂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 시대 : 조선
  • 지정일 : 2000-09-05
  • 소재지 : 구미시 인의동 642-2
「旅軒輯」의 「慕遠堂記」에 依하면 慕遠堂은 旅軒 張顯光 先生(1554~1637)의 家屋이 壬辰倭亂으로 消失되어 居處할 곳이 없자, 門人 張慶遇를 비롯한 門徒와 親戚들이 協力하여 1606年에 建立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聽天堂 張應一(1599~1676)이 建立한 堂宇로서 學問을 닦고 交遊의 場으로 삼았던 곳이다. 1607年에 세워진 것이다. 旅軒廟宇는 先生의 位牌를 奉安한 祠堂으로 1650年에 創建되었다. 慕遠堂을 세운 旅軒 張顯光 先生의 歷史的 位相은 너무 널리 알려져 있어 再論할 必要가 없을 것 같다. 先生은 朝鮮中期 文臣이자 性理學者로 本貫은 仁同, 字는 德晦, 號는 旅軒이다. 23歲가 되던 1576年(宣祖 9)에 才能과 行實이 알려져 朝廷에 薦擧되어, 주어진 官職에 對해 進退를 거듭하다가, 1602年 工曹佐郞과 刑曹佐郞을 歷任하였고 以後에도 많은 벼슬이 주어졌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1624年 司憲府 掌令, 司憲府 執義, 工曹參判, 1626年 刑曹參判을 거쳤다. 1636年 12月에 丙子胡亂이 일어나자 義兵의 蹶起를 促求하는 通文을 돌리고 軍糧米를 모아 보냈다. 그러나, 이듬해 2月 삼전도에서 仁祖가 降伏했다는 消息을 듣고 입암삼에 들어가 半年後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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