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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및 육영루

  • 지정 : 문화유산자료
  • 한자명 : 花齋 및 毓英樓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 시대 : 조선
  • 지정일 : 2002-02-14
  • 소재지 :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606
이 齋舍와 亭舍는 英陽南氏 子孫들이 派祖 南須의 遺德을 기리어 建立한 것이다. 南須(太祖 4(1395)~成宗 8(1477))는 號를 松亭이라 하고 高麗末 內侍院 神虎衛保勝中郞將으로 在職하다가 高麗의 運이 다함에 벼슬을 버리고 蔚珍에 避世하여 살던 永蕃의 넷째 아들이다. 太宗 17年(1417) 吏曺의 薦擧로 入住하여 世宗 16年(1434)에 直長, 17年에 主簿, 23年에 判官, 25年에 司憲府 監察, 26年에 龍潭縣令을 歷任하였다. 世宗 30年(1448)에 벼슬을 내어놓고 落鄕, 山川을 즐기면서 後學養成에 힘쓰다가 端宗이 世祖에게 讓位하자 門을 닫고 사람을 대하지 아니했다. 그는 英陽南氏 松亭公派 寧海入鄕祖로 스스로 松亭이라 號하며 松竹의 節槪를 지켰다. 英祖 50年(1774)에 創建한 것을 알 수 있고 純祖 24年(1824)에 建物이 頹落하여 옛대로 重建하였으며 1912年(壬子)에 齋舍에서 불이나 毓英樓도 禍를 입었는데 1914年(甲寅)에 齋舍는 重建하고, 毓英樓는 남은 部分을 거두어 原形대로 重建하였다. 花齋는 正面 5칸 側面 5칸 홑처마 와가지붕이며, 毓英樓는 正面 3칸 側面 1칸반 홑처마와가 팔작지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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