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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곡동 효열비각

  • 지정 : 문화유산자료
  • 한자명 : 蓬谷洞 孝烈婢閣
  • 유형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지석
  • 시대 : 조선
  • 지정일 : 2000-09-04
  • 소재지 : 구미시 봉곡동 446-2
「孝子 朴震煥」의 字는 楊伯 號는 南岡 密陽人 通德郞이며 慶州府尹 守弘의 長子이다. 平素에 孝誠이 至極하여 父親이 尙州旅舍에서 危毒하자 달려가 割指而進으로 看病하였으나 보람없이 殞命하자, 곧 故鄕으로 運柩하여 多峰山 先塋下에 安葬하고, 薄衣素饌으로 몸을 돌보지 아니하며 3年 侍墓하고는 結局 衰弱하여 46歲를 一期로 殞命하였다. 肅宗 7年에 旌閭가 내리고, 曾孫 朴鳳齡(顯宗 12. 1671~肅宗 44. 1718)이 全羅道觀察使, 吏曹參議, 大司成 等 貴하게 됨으로써 通訓大夫司憲府執義에 贈職되고 孫子 朴成裕(肅宗 11. 1685生)가 武科로 英祖 4年 李麟佐亂때에 戰功을 세워 原從二等勳에 오름으로써 祖上 三代에 追恩을 받아 通政大夫吏曹參議로 贈職되었다. 宋時烈의 墓碣文, 李尙逸의 墓誌가 있고, 肅宗 7年 辛酉에 旌閭가 내렸다. 「烈女 楊州趙氏」 孝子 朴震煥의 3子 世輝의 孫子인 恒齡의 妻이다. 父는 僉知中樞府事 趙泰邦이다. 男便이 天稟이 明敏하고 才質이 出衆하였으나 타고난 體質이 懦弱한데다가, 肺疾患으로 恒常 病苦에 시달렸다. 至極精誠으로 看護하였으나, 34歲에 殞命하자 이튿날 夾室에서 自決하여 男便을 따라 젊은 나이에 從死하였다. 英祖 5年(1729)에 旌閭가 내렸다. 烈女 咸從魚氏(正祖 2. 1778~純祖 11. 1811) 震煥의 2子 增輝의 7世孫 來殷의 妻이다. 父는 魚有瓚이다. 男便이 資質이 聰明하고 氣像이 凜凜하여 健康도 좋았으나 狹患으로 純祖 11年 正月 29日에 急死하였으나, 이때 婦人의 斷指給血도 所用이 없었다 한다. 夫死成服後 이튿날 새벽에 뒤뜰 감나무에 목을 매어 自決함으로써 男便을 따라 下從死하였다. 이듬해인 純祖 12年(1812)에 旌閭가 내렸다. 孝子 朴震煥의 舊碑는 6.25때에 破壞되어 파묻혔던 것을 다시 찾아내어 上部 折半을 碑閣에 세워두었고 두 烈女의 赤色 扁額은 아직도 그 保存狀態가 良好하다. 한 門中에 孝子 烈女가 그리 흔치 않는 現實을 감안할 때 鄕土的, 敎育的 價値를 考慮하여 文化財로 指定, 世人에 널리 알릴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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