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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수원김씨 남계공파 종중 문적

  • 지정 : 문화유산자료
  • 한자명 : 浦項 水原金氏 南溪公派 宗中 文籍
  • 유형분류 :기록유산 > 문서류 > 일괄문서 >
  • 시대 : 조선
  • 지정일 : 1999-12-30
  • 소재지 : 포항시 한국국학진흥원 보관
이 典籍 및 古文書는 迎日地域에 居住하는 水原金氏 一族들에 關聯된 資料로서 典籍은 金見龍(1550~1620)의 壬辰倭亂 參戰時의 日記이며, 古文書는 金淀, 金八音 그리고 金見龍 等이 國家로부터 받은 敎旨, 牒旨이다. 이들 水原金氏는 高麗末 紅巾賊 侵入時에 功을 세운 金漢眞의 後裔이며, 金漢眞의 孫子 禮伸이 迎日地域으로 옮겨와 그의 後裔들이 이곳에 定着하게 되었다고 한다. 資料製作의 順序別로 該當 人物을 차례로 살펴보면, 金淀(1426~1493)은 禮伸의 아들로 1456年(世祖 2) 式年文科에서 丁科 15人으로 及第하여 司圃·仁同縣監·校理 等을 歷任한 人物이다. 金八音(1651~1729)은 1676年(肅宗 2)에 武科에 及第하여 訓練院判官을 歷任한 後 僉正을 歷任하였다. 그리고 金見龍(1550~1620)은 本貫은 水原, 字는 德普, 號는 月洞·水月齋로서 大松面 月洞에서 태어났으며, 1592年 壬辰倭亂이 勃發하여 慶州城이 陷落되자, 그의 동생 元龍, 從弟인 宇灝·宇潔 ·宇淨 等과 함께 擧兵하여 安康戰鬪에 參戰한 以來 永川城·慶州城의 收復에 功을 세웠다고 한다. 이러한 軍功으로 因해 折衝將軍 豆毛浦萬戶에 任命되었으나, 仕宦하지 않고 鄕里에 隱居하여 學問의 硏究에 힘썼다고 한다. 이들 資料의 具體的인 內譯은 다음과 같다. 指定內容(3種7点) (1) 敎旨 : 金淀의 1475年(成宗 6) 司圃署 司圃 任命, 楮紙 65cm×40cm (2) 敎旨 : 金淀의 1478年(成宗 9) 仁同縣監 任命, 楮紙 70cm×45cm (3) 敎旨 : 金淀의 1493年(成宗 24) 承文院 校理 任命, 楮紙 60cm×50cm (4) 敎旨 : 金八音의 1676年(肅宗 2) 武科 丙科及第, 紅牌 35cm×95cm (5) 帖旨 : 金八音의 1693年(肅宗 19) 僉正 任命, 楮紙 50cm×45cm (6) 敎旨 : 金見龍의 1828年(純祖 28) 戶曹參議 追贈敎旨, 楮紙 80cm×55cm (7) 壬亂日記 : 金見龍의 壬亂參戰日記, 1592年(宣祖 25) 4月13日~1598年(宣祖 31) 2月15日까지 기록(表題 : 水月齋遺集) 그 外 18世紀 後半 以來의 戶口單子 10餘点, 完文 2点, 所志 2点, 1866年 丙寅洋擾時의 傳令 1点, 通文 1点, 試券 1点 等이 있으나 資料的인 價値는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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