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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강서당

  • 지정 : 기념물
  • 한자명 : 道岡書堂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당
  • 시대 : 조선
  • 지정일 : 1999-03-11
  • 소재지 : 영주시 부석면 상석리 364-7
이 建物이 位置한 上石里는 山間마을이지만 比較的 큰 規模의 自然部落으로서 40餘戶에 達하며, 宣城(禮安)金氏 20餘戶를 爲始하여 여러 姓氏가 混居하고 있다. 이 建物은 舊韓末의 獨立運動家이며, 이 地域의 代表的인 儒學者인 金東鎭(1867~1952)이 後進의 養成을 爲해 建立한 書堂이다. 金東鎭은 本貫이 宣城(禮安), 字는 國卿, 號는 貞山으로 吏曹判書 金淡(1416~1464)의 16世孫이며, 興海郡守 金?(1596~1660)의 10世孫이다. 그는 李象靖(1710~1781, 大山), 金興洛(1827~1899, 西山) 系統의 學問을 繼承한 舊韓末 嶺南地域의 代表的 儒林의 한 사람으로서 1908年 以來 紹修書院의 院長을 3番 歷任한 人物이다. 日帝强占期에는 獨立運動에도 活潑히 參與하여 1913年 獨立義軍府의 設立에 加?하였고, 1919年 파리장서 事件에도 主動人物의 한 사람으로 參與하였다(署名順位 4番). 이로 因해 逮捕 拘禁되었고, 以後 이 地域에서 일어난 여러 獨立運動에 加?하여 몇 차례에 걸쳐 投獄되었으며, 日帝에 抗拒하기 爲해 끝까지 頭髮에 있어 상투의 維持, 韓服의 着用 等을 固執하여 日帝로부터 ‘儒生’, ‘兩班’, ‘漢學者’, ‘無識’ 等으로 指目되어 監視의 對象이 되었다. 1945年 解放 以後에도 이 地域의 儒林으로 活躍하면서 이곳 道岡書堂을 中心으로 後進養成에 努力하여 平素 80餘名의 學生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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