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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금성면 고분군

  • 지정 : 사적
  • 한자명 : 義城 金城面 古墳群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무덤 > 무덤 > 고분군
  • 시대 : 삼국
  • 지정일 : 1998-04-13
  • 소재지 :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224-2 등
嶺南地方의 普遍的인 現象처럼 義城地方에서도 靑銅器 初期鐵器時代의 文化的 傳統과 紀元前 2世紀代의 韓半島 西北地方에서 展開된 政治的 波動으로 三韓時代에 召文國이라는 小國이 成立되었다. 이 召文國은 「三國史記」에 依하면 新羅 伐休尼師今 2年(185)에 左右軍主인 仇道와 仇須兮에 依해 征伐당한 것으로 記錄되어 있지만, 이 기사의 취신 與否는 論難이 없지 않다. 義城地域이 新羅의 影響圈으로 編入되었던 考古學的인 證據는 빨라도 4世紀 後半 以前에는 確認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三國史記」에 이러한 記錄이 남게 된 것은 大略 3世紀代에 召文國이 사로국이 主導하는 辰韓聯盟體의 一員으로 編入된 事實을 傳하는 것일까 한다. 이러한 召文國이 언제 新羅의 支配를 받는 地方行政 單位로 編入되었는지는 分明치 않다. 文獻에는 關聯記錄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大略 6世紀代의 州郡制의 施行過程에서 문소군으로 編制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이 不足한 文獻記錄만으로는 復元이 不可能한 召文國의 歷史는 결국 考古學的 資料에 依存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注目되는 것이 金城古墳群이다. 義城郡 金城面 일대는 오랫동안 召文國의 故地로 排定되어 왔는데 數百基에 달하는 金城古墳群의 存在를 通해 迷窮에 빠진 召文國의 歷史를 復元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학술자료

  • 1. 義城 조文國史蹟地內 古墳 基底部 發掘調査 報告書(2007년 발행)
    조사보고서 / 저자 :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 발행처 :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 2. 고고학과 금석문에 나타난 조문국(2011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전덕재 , 권혜인 , 정성일 / 발행처 : 의성군
  • 3. 금성산 고분군 신라 장신구의 특수성(2019년 발행)
    학술논문 / 저자 : 김재열 / 발행처 : 영남고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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