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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송화주

  • 지정 : 무형유산
  • 한자명 : 安東松花酒
  • 유형분류 :무형유산 > 음식제조 > 민가음식 > 향토술빚기
  • 시대 : 조선
  • 지정일 : 1993-02-25
  • 소재지 :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1037
이 술은 안동의 전주류씨(全州柳氏) 무실파 정재종택(定齋宗宅)에서 대대로 빚어온 가양주(家釀酒)로서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에 사용되어 왔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상고(詳考)하기 어려우나 문중에 전하는 구전(口傳)에 따르면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 1777~1861)시대 무렵에는 제주(祭酒)로 써 왔다고 하니 술의 역사가 2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송화주는 ‘규호시의방(閨壺是議方, 정부인안동장씨저(貞夫人安東張氏著), 1598~1680)’에는 송화쥬라 제(題)한 다음에 “송화를 따서 말리고 찹쌀 닷말을 백세하고 세말하여 송화 닷되를 물 세말에 많이 달여서 죽을 쑤워 차지거든 국말 일곱되를 섞어 넣었다가 닷세 후에 백미 열말을 백세하여 익게 쪄 송화 한말을 물 닷말에 많이 달여 섞어 차거든 누룩 서되 섞어 넣었다가 이칠일 후에 쓴다”고 있다. 또 송화주는 송엽주(松葉酒)라고도 하는데 광산김씨(光山金氏) 예안파(禮安派) 문중(門中)에 유전되는 ‘수운잡방(需雲雜方, 김유저, 1481~1552)’에는 송엽주라 제하여 거의 같은 내용의 글이 쓰여 있다. 조선왕조시대 문헌에는 150여종의 전통곡주가 수록되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분류되어 있는 민속주의 주종개념을 분류하면 곡주(穀酒)를 바탕으로 한 탁주(濁酒), 청주(淸酒), 증류주(蒸溜酒)가 그 대종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고유 술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탁주에서 시작하여 청주를 거쳐 증류주로의 변혁이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술은 우리나라가 속해있는 문화권에 절대적 영향을 받으면서 독창적인 자국문화의 소화를 거쳐 시대적 기호(嗜好) 요구 등의 변화로 흥망성쇠를 거듭하여 왔다고 하겠다. 청주는 주로 상층계층에서 많이 소비되고, 그 제조방법은 대체로 찹쌀과 곡자로 주모를 만들고 여기에 찹쌀 및 멥쌀로 덧술하여 만든다. 약주는 빚을 때나 또는 맑은 청주에다 초근목피(草根木皮), 과실(果實) 등의 부재료를 첨가하여 만드는데 이것을 약양주(藥釀酒) 또는 향양주(香釀酒), 가향주(加香酒)라고 한다. 전승자 이숙경(李淑京)은 안동군 임동면 수곡리의 전주류씨 정재종택의 종부이다. 그는 성주 한개 이해석(李海錫)과 김남교 사이의 2남 4녀중 장녀로 태어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조부에게 한학을 수학하였다. 17세에 정재종택 류광준(柳光俊, 당시 안동농림학교 학생, 작고)에게 출가했다. 이러한 가정에서 엄한 교육으로 자라나 무실로 출가하여 시부모(당시 61세, 65세때 작고)에게서 직접 송화주 양조법을 배우고, 생가시모(봉화해저)와 양가시모(경주계남)을 섬기면서 또한 양조법을 익히며 생활하여 왔다. 원래 시조부는 방문객이 많았으며 시모는 자주 몸이 불편하여 1년 내내 송화주를 빚어야 했고, 이 송화주는 기제사 12회와 묘사 27회에 제주로 써왔으며 접빈객에는 필히 이 술을 내어야 했다. 현재도 안동의 수곡, 천전, 하회, 도산, 오천 및 봉화 해저, 서곡, 영덕의 영해 등지의 방문객들이 이 술 때문에 두른다고 하며 친정마을인 한계의 청주, 약주와 비교할 때 친가쪽이 훨씬 양조법도가 엄숙하고 정성을 기울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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